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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Sep 03. 2024

프롤로그, 성성존존(成性存存)



成性存存 道義之門

성성존존 도의지문


성(性)을 이루고 있어야 할 것을 있게 하는 것이 도의에 이르는 길이다. -역경()-



가끔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어느 날 문득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고부터 고달픈 인생길이 이어집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길, 과연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리고 그 삶의 여정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작은 의미라도 새기게 되것일까요?



天命之謂性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이른다.


이 글은 중용에 나오는 말로, '성(性)'은 '忄'(마음심) + ''(날생)으로 '마음이 생겨난다'는 글자입니다. 내가 처음 태어날 때부터 나에게 이미 있었던 최초의 마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는 아직 나에게 자의식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니, '(性)'은 의식 이전의 것으로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내 마음의 씨앗이자 핵인 셈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성성존존(成性存存). 성을 이루고 있어야 할 것을 있게 한다.


거대한 우주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은 질서 정연하다고 합니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이고 빈틈이 없다고 합니다. 하느님이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하늘이 각자에게 부여한 성(性)이 있는데, 인간마다 각각 다른 성질이나 기질, 특성그것입니다. 하늘은 인간이 그 결대로 살아가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팔자대로 살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소명입니다.  소명을 이루어가는 것이 첫 번째 '성성(成性)', 성을 이루는 일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본디 모난 형태라고 합니다.(그림의 노란색 부분) 도드라진 부분이 있고 움푹 패인 부분이 있습니다. 도드라진 부분은 장점, 강점으로 나타나고, 패인 부분은 결핍, 약점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약점인 패인 부분을 보완해서 완전 동그란 원 형태인 영성에 이르려고 합니다. 그러한 노력들이 쌓임에 따라 모남이 있는 성질이 일정한 품격을 갖추어 성품(性品)이 됩니다. 비록 완전한 영성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하더라고 자신의 결핍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두 번째 '성성(成性)'입니다. 즉, '성성(成性)'은 '자신에게 부여된 팔자대로 살되 영성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있어야 할 것을 있게 하는 것, '존존(存存)'은 실천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가고자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실천 행동과 그 결과를 말합니다. 인간은 인생을 살면서 많은 고난과 가시밭길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가시밭길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는 이유는 그 길이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무엇인가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있도록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내가 행하고 남겨야 할 것, 그것이 인생을 사는 목표이자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열심히 살았던 인생의 전반기를 보내고 이제 인생 후반기를 살고 있습니다. 전반기를 열심히 살았으니까 후반기는 대충 편하게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살면 될까요? 아닐 것입니다. 인생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며 나태한 삶은 결코 하늘이 용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생의 후반기는 인생의 끝을 생각하며 살라고 합니다. 인생의 끝에서 나의 생을 돌아봤을 때, 한 점의 후회도 없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라고 합니다.


인생의 전반기는 육체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후반기는 어떨까요? 체력과 활동력은 떨어지고 몸이 점점 쇠퇴해져 갑니다. 그러나 정신은 여전히 젊은 사람 못지않습니다. 따라서 인생의 후반기는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인생의 전반기가 지식을 넓게 쌓는 시기라고 하면, 후반기는 그 지식을 바탕으로 지혜의 깊이를 깊게 하는 시기입니다. 젊은 시절 바쁘게 열심히 살면서 놓쳤던 부분을 사유와 사색을 통해서 마음에 채워가는 시기가 바로 인생 후반기인 것입니다.


화장터에서 인간의 육신이 한 줌 재로 변합니다. 제아무리 잘나고 똑똑했건, 돈이 아무리 많았든 간에 모든 것 내려놓고 단 하나도 갖고 가지 못합니다. 임플란트나 수술 때 심어 놓았던 관절 보철물도, 심지어 마지막으로 걸쳤던 수의조차도 모두 두고 떠납니다. 맨몸으로 왔다가 맨몸으로 가는 것,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이 세상에 와서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요? 삶의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후대에 대한 영향력입니다. 내가 남긴 발자취, 업적, 선한 영향력 등. 과거부터 수많은 인간들이 이 세상을 거쳐가면서 남겨놓은 영향력이 지금의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삼라만상 곳곳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만일 선인들의 그 영향력이 없었다면 이미 이 세상이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망했을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요? 그들이 나를 생각하면서 어떤 사람이었다고 기억해 줄까요? 그들 중에 한 명이라도 나로 인하여 선한 영향력을 받아서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사람이 있을까요? 그리고 나의 발자취는 삼라만상 어디에 어떻게 어떤 이미지로 새겨지게 될까요?


얼마 전 돌아가신 형의 위패를 에 모셨습니다. 여전히 문득문득 형 생각이 나고, 이 세상에 안 계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따뜻하게 나를 보살펴 주었던 형. 형 덕분에 어려웠던 시기를 잘 넘기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형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 영향력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제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적어도 저한테 만큼은 형은 인생의 의미를 제대로 남긴 셈입니다.




※ 이 글은 강기진, '오십에 읽는 주역(周易)'에 나오는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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