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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Feb 07. 2022

업무의 시스템화에서 놓치게 되는 것

작은 구멍이 둑을 무너뜨린다


개인 컴퓨터가 보급되기 이전.. 회사의 업무는 조직과 사람 중심으로 행되었다.

사무실에서 수기로 전표를 끊고 수기로 장부기장을 하였고.. 현장에서도 수기로 일일이 기록을 남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으로 확인하게 되고 실물과 함께하는 업무환경이 주를 이루었다.

신입사원 시절 귀가 따갑게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정물일치'였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IT 기술의 발달로 회사의 많은 업무가 IT 영역으로 넘어가.. 자동화되고 시스템화 되었다.

반면 사람의 영역은 줄어들고 업무를 하는 사람의 수도 대폭 줄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내가 실무자 때 담당했던 원가계산 업무를 비교해 보면..  지금은 인력으로는 계산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IT 시스템의 힘을 빌려 한 사람이 해낼 수가 있다.

거의 10배 100배 정도의 능력 차이랄까..


현장관리자도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통해 생산현황을 모니터링하고 결과 분석을 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과거 같았으면 하루에도 수차례 현장을 들락거렸을 테지만.. 시스템화 된 이후에는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있느라 현장에 갈 틈이 없다.

반면에 관리 인원수는 대폭 줄어들었다.


자동화 시스템화는 현대 기업경영에서 필수이지만.. 그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

그중의 하나가 직원들의 '현장' '실물'에 대한 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요즘 모 상장회사 자금담당 직원의 거액 횡령사건으로 시끄럽다.

일반 서민은 상상하기도 힘든 천문학적인 회삿돈을 빼돌려 주식투자 등으로 탕진했다는데.. 개인 단독범행으로 굳어지는 모양새이다.


외형이 6천억 원 정도인 회사에서 2천억 원이 넘는 액수를 횡령했다는 것은.. 단지 현금예금에만 그치지 않고 매출채권이나 차입금 등 여러 항목에 손을 대었을 텐데.. 내 업무 경험상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회사가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조직관리 측면에서.. 조직 상호 간 견제와 보완 기능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이를테면..

자금과 회계 조직을 분리하여 자금집행에 대해서 상호체크를 하게 한다던지.. 거래처와의 뒷거래를 차단하기 위해서 구매 결정과 대금결제 업무를 같은 사람 밑에 두지 않는다던지.. 산과 품질조직을 분리함으로써 품질문제가 있는 제품이 적당히 타협되어 통과되지 못하게 한다던지.. 등이다.


에도 대부분의 회사에는 감사조직이 있어서.. 정기 비정기적으로 각 조직의 업무가 법과 규정에 맞게 수행되고 있는지를 점검한다.


그리고 상장회사는 '내부회계관리시스템'이란 것을 구축하여.. 회계정보가 정확하게 기록되고 유지되는지 '스스로' 점검하여야 하며.. 외부감사인은 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도록 되어 있다.


적어도 상장회사 정도면 이렇게 여러 단계에 걸쳐 모니터링 및 통제기능이 작동되도록 시스템화 되어 있는데.. 어떻게 그런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던 걸까?


또 하나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그렇게 큰 금액이 법인계좌에서 개인계좌로 빠져나가도록 은행 측에서는 어떻게 회사 측에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내가 회사에서 관리총괄 본부장으로 근무할 때 여러 은행과 거래를 하였는데.. 최소한 한두 달에 한번 정도는 지점장을 만났고 지역을 총괄하는 본부장도 만나곤 하였다.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어느 규모 이상의 일상적이지 않은 은행거래가 있었다면 반드시 지점장으로부터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평소에 그 정도의 네트워크와 유대관계를 형성해 놓는 것은 직장인에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이다.




회사를 운영할 때.. 사람을 너무 믿어서도 안되지만 시스템을 너무 신봉해서도 안된다.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이란 없고 그 시스템도 결국은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대부분의 회사에서 업무의 상당 부분이 시스템화 다.

일상 업무는 물론.. 감사와 통제 기능도 시스템화 되고.. 심지어 외부감사도 시스템으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물일치'에 대한 중요성과 '실사' 기능이 간과되기 쉽다.


내가 실무자였던 시절에는 업무가 '사람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실물'에 대한 감이 있었고.. 뭔가 이상이 있으면 바로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업무가 IT 영역으로 넘어가고 시스템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까.. 통제업무조차도 단순히 요식행위로 치부되어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정보와 실물과의 '대조'작업 없이.. 자리에 앉아 시스템(정보) 상으로만 처리하고 마는 것이다.

 



업무의 자동화 시스템화는 중요하며 당연히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건 그 업무의 '본질' 임을 간과해서는 안되며.. 그 본질을 꿰뚫고 제대로 업무를 수행토록 하는 것이 '사람' 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의 역량이 떨어지거나.. 그 업무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운영하게 되면.. 그 시스템은 삐그덕 거리게 되고 도처에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된다.


그러나 대다수 경영자들은 그런 것들을 잘 모른다.

눈에 보이는 건 시스템과 시스템에서 산출되는 'Data' 이지.. 업무의 본질은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부회계관리시스템'을 예로 들면.. 업무의 본질은 '회계정보가 적절하게 표시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지.. 시스템 상에서 '이상없음'이라고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방 철책을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제집 드나들듯 넘나드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최첨단 감시장비에 여러 번 감지되었다는데.. 확인하지 않고 무시되었다.

근무자가 '경계근무'라는 업무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수행하지 않은 결과이다.

시스템에 경고 알람이 떠도 운영자가 무시하면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일지라도 무용지물이다.


올바른 리더라면 시스템 못지않게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사람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는 조직은 망하게 되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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