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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Apr 14. 2022

조직체계와 결재라인의 의미

팀은 '직무' 중심



"이게 왜 내 서랍에 있냐?"


일주일 전에 결재 올렸던 보고서를 던져주며 부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 서류를 찾는다고 온 사무실을 얼마나 뒤졌었는데...


내가 직장생활을 하던 초기에는 전자문서라는 게 없었고 거의 모든 문서나 서류가 종이였다. 각종 품의서나 보고서를 작성해서 결재를 올리려면 표지 상단에 수평이 잘 맞게 심혈을 기울여 결재인을 찍고 거기에 빨간 인주를 묻혀 업무용 도장을 예쁘게 찍었다.


그때는 결재라인이 층층시하여서 긴 라인을 따라 빨간 도장이 줄줄이 찍힌 모습을 보노라면 은근한 위압감과 장엄함이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결재라인의 오른쪽에 가깝게 위치한 윗사람들은 밑에서부터 줄줄이 찍혀있는 도장을 보며 든든하고 흐뭇한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검토를 하고 도장을 찍었으니까 제대로 잘 만들어졌겠지?"


그러나 과연 중간에서 도장을 찍은 그 많은 사람들이 각각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요즘은 그룹웨어 상의 전자문서로 결재를 하는 게 보편화되었다. 시스템을 보면 누구한테 결재가 올라가 있는지, 누가 결재를 안 하고 깔아뭉개고 있는지 다 나온다. 한때는 사장님께서 결재를 빨리빨리 하지 않는다고 관리자들에게 호통을 쳐서, 모두들 마우스를 움켜쥐고 화면만 노려보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조직체계가 '부-과'에서 '팀'제로 바뀌었는데 결재라인은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아래와 같이 바뀌었다면 다행스럽게도 정상적으로 팀제가 운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여전히 아래와 같은 결재라인을 타고 있다면 팀제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위의 결재라인은 '직무' 중심이고 아래 결재라인은 '직급' 중심이다.




회사 운영에 있어서 결재라인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회사는 '사람'이 '일'을 하는 곳이고, '일'이란 당연히 '직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팀제를 정상적으로 운영한다면 결재라인도 당연히 직무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직무 수행자인 '담당자' -> 관리자인 '팀장' -> 영업부문, 생산부문, 관리부문 등 부문별 책임자인 '본부장' -> 최종 결재권자인 '사장'으로 단순화되어야 한다.


최적의 인원 구성으로 최대의 효율을 올릴 수 있도록 조직을 설계하고 사람을 배치하여야 기업의 경쟁력이 산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재라인에 고스란히 담겨있어야 한다.



논리적 사고의 개념으로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라는 게 있다. 어떤 집단 내 항목들이 상호 배타적이면서 모였을 때는 완전히 전체를 이루는 것을 의미하는데, '겹치지 않으면서 빠짐없이 나눈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면 A 그림과 같은 모습이다. 반면에 B 그림은 도형 간에 교집합이 있고 동떨어진 도형이 존재한다.




팀제로의 조직체계 개편은 기업문화의 획기적인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


정상적으로 팀제가 운영되고 있는 회사는 '팀'과 '팀장' 중심으로 업무가 이루어진다. 팀원 개인별 직무가 제대로 잘 짜여 있는지, 팀의 목표가 각 팀원들의 직무에 잘 반영되어 있는지, 누락이나 중복됨은 없는지, 바로 MECE의 A 그림과 같은 모습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면 팀원-팀장-본부장으로 이어지는 결재라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반면에 여전히 담당-대리-과장-팀장 등으로 이어지는 결재라인이 존재한다면, 아래 그림처럼 각 팀원들의 직무가 중첩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MECE의 B 그림과 유사한 모습이다. 대리와 과장의 직무가 담당자나 팀장과 어떻게 다른지, 중복되지나 않는지 따져봐야 한다. 혹시라도 분명하고 명쾌하게 구분되어 설명되지 않는다면 잘못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연공서열 문화에 익숙해져 왔었다. 그러다 팀제를 도입하면서 진정한 팀제에 대한 고민없이 껍데기만 덮어 씌웠다. 그러다 보니 '담당- 대리- 과장- 팀장- 상무- 전무- 사장'과 같이 직급과 직책이 혼합된 결재라인이 생기게 되었다.


엄밀하게 말해서 회사에서 '승진'이라고 하면 팀원에서 팀장으로, 팀장에서 본부장으로, 본부장에서 사장으로 직책(직무)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위 직무에서 상위 직무로 직무가 변하는 것이다. 책임과 권한이 확대되고 그에 따른 보상도 커진다. 하지만 연공서열을 중요시하는 우리는 대리, 과장, 부장 등 직급(호칭)이 바뀌는 것을 승진했다고 한다.


"승진하셨으면 업무가 바뀌었나요?"

"아뇨, 업무는 그대론데요."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OECD 국가 중 거의 꼴찌를 달리고 있다. 직무 중심의 업무체계가 제대로 정착이 안되고 있는 것도 원인 중의 하나이다.




팀제에 있어서 조직의 성패는 팀장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팀장은 팀원들로 하여금 팀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토록 하여 성과를 내야 함은 물론 팀원들의 성장 육성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경영자는 팀장 육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업무역량은 물론이고 리더십, 코칭 스킬,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팀장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상당히 많다.


체계적인 교육이나 훈련 없이 팀장 역할을 맡기는 것은 개인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는 것이며, 회사 입장에서도 큰 모험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울러 팀장을 잘 육성시키면 조직의 업무가 차질 없이 진행됨은 물론, 차기 리더나 경영자로 성장할 수 있는 인력 풀을 그만큼 탄탄하게 갖추게 되는 것이다.


우리 회사의 결재라인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한번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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