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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May 11. 2022

삼시세끼


'삼시세끼'는 모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프로그램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한적한 골집에 모여 하루 세끼 직접 밥을 해 먹는 프로인데.. 별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잔잔하게 퍼지는 일상의 모습이 꽤나 흥미로웠다.


그 프로를 보면서 그냥 자기네들끼리 밥을 해 먹으며 돈을 버는 연예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때마다 밥을 해 먹는 일이 꽤나 정성과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구나 하는  조금은 이해하게 되다.


현업에서 퇴직을 하고 뒤이은 코로나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집에서 삼시세끼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바로 내가 직면하게 되었다.


회사에 다닐 땐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허구한 날 끼니를 챙기는 게 얼마나 귀찮고 힘든 일인지 스스로 실감하게 된 것이다.


'점심은 뭘 먹지?'

'저녁엔 또 뭘 먹지?'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남편상은.. 돈을 많이 벌어오는 남편도 아니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남편도 아니고 요리를 잘하는 남편도 아니고 그냥 집에 없는 남편이라는 말이 있다.

살아보니 과연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나저나 큰일 났다.

끼니때마다 아내의 눈치를 보게 생겼으니 말이다.




나는 젊었을 때 꽤 오랜 기간 하숙이나 자취를 한 경험이 있다.

그때는 식사며 빨래며 스스로 해결했지만 결혼 이후에는 기껏해야 주말 아침에 김치볶음밥을 만들거나 라면이나 끓이는 정도였으니 앞으로 살아가려면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일단은 아내와 같이 평화롭게 공생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절대로 아내에게 삼시세끼를 기대하지 않는다.


둘째, 아내가 외출할 때 내 끼니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도록 스스로 해결한다.


셋째, 설거지는 물론 집안 청소나 세탁물 정리정돈 등 집안일을 아내의 부탁이 없어도 눈치껏 알아서 한다.


넷째, 가끔은 아내가 기대하지도 않은 요리를 하여 아내를 기쁘게 한다.

 

다섯째, 댕댕이를 구박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퇴직 후 제과제빵 학원을 다니며 배운 빵 만드는 기술이 요즘 요긴하게 쓰인다.


맨날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지라 가끔 빵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

빵 몇 조각에 야채샐러드랑 삶은 계란 한 개면 그런대로 배를 채울 수 있고.. 단백질 보충을 위해 육류나 닭가슴살 볶음을 곁들이면 금상첨화이다.


이런 대용식은 때때로 밥보다 잘 넘어가 아내도 즐기는 편이다.



요즘은 새로운 취미거리가 생겼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TV 시청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홈쇼핑 채널이 흥미롭다.


보고 있노라면 점점 빠져들게 되고 구매욕구가 막 샘솟는다. 마치 지금 구입하지 면 큰 손해를 볼 것만 같고 종료시간이 째깍째깍 줄어들수록 막 조바심도 생긴다.

더구나 식품코너를 볼 때는 마음 한구석에 늘 삼시세끼라는 숙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겸사겸사 자주 구매를 하는 편이다.


가끔은 방송에서 기대했던 것과 실제가 많이 달라 아내의 잔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대개는 나름 선전하는 편이다.

그래서 아내도 홈쇼핑이나 온라인 구매를 크게 탓하지는 않고 가끔씩은 지원금을 하사하기도 한다.


그렇게 구매한 식품으로 만든 요리 중에 아내에게 칭찬을 받거나 무난한 평가를 받은 게 몇 가지 있다.


건조 생선에 무 감자 등 야채를 넣고 고추장 양념으로 간을 한 생선조림, 한우 등심 또는 간편식 스테이크에 야채 등을 곁들인 스테이크 요리, 땡초와 잔파를 다진 계란물을 얹고 치즈를 뿌려 오븐에 구워낸 조개구이 등이다.



가끔은 랍스터나 대게찜 등 특별식을 즐기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금전적인 부담다소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아내의 '이거 괜찮네~!' 한 마디면 땡큐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아내의 칭찬에 요즘 내 요리 솜씨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게다가 제과제빵 학원에 다니면서 설거지에는 이미 이력이 나 집에서 요리를 해도 주방 정리정돈을 깔끔하게 하니 아내가 별 불만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


내 비록 최고의 남편상인 '집에 없는 남자'는 되지 못하지만.. 적어도 아내의 눈칫밥만 먹는 '삼식이'는 되지 않으려고 오늘도 열심히 홈쇼핑 채널의 식품코너를 기웃거리고 있다.


아.. 생존의 나날이 힘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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