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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Jun 16. 2022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 남자의 책 이야기


며칠 전 퇴직한 회사의 퇴직임원 모임에 참석하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임을 갖지 못하다가 거의 2년 만에 모인 자리였는데.. 30여 명의 옛 직장 선후배들과 만나 고기를 굽고 술잔을 기울이며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그날 참석한 선배님들의 연령은 60대 중반부터 70대 중반까지가 주류였고 최고령은 80대 초반이었는데.. 그 윗대는 건강이 좋지 못하여 모임에 나오지 못하거나 더러는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육십을 갓 채운 나 같은 신입은 선배님들이 계신 자리에 끼기 부담스러워 구석에 조용히 앉아 고기를 구우면서 선배님들의 무용담을 경청할 따름이었다.


어떤 선배님은 심혈관이 막혀 스텐트 시술을 두 번이나 받고도 여전히 기름진 음식을 즐긴다고 하고.. 어떤 은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는데 건강도 챙길 겸 요즘 테니스에 푹 빠져 지낸하고.. 어떤 분은 암수술을 받아만사가 다 조심스럽다고 하였다.


입원과 수술 경험을 마치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니.. 내가 주니어 시절 느꼈던 위엄이나 당당함은 간 곳이 없고 머리숱도 많이 줄고 피부도 탄력을 잃어가는 노년의 모습에.. '참 세월에는 장사가 없구나'하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아름다운 죽음은 없다. 그러나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난 순간부터 하루하루 나이를 먹다가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삶의 파국을 피할 수가 없다. 죽음은 모든 생명체에 있어서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고 자연의 질서인 것으로.. 어떻게 보면 우리는 하루하루를 사는 게 아니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의학자인 아툴 가완디가 쓴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을 읽어 보면.. 번쯤은 '죽음'이라는 명제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여지를 갖게 한다.


현대사회는 사람들.. 젊은이나 노인 모두에게 더 많은 자유와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제공하는데.. 거기에는 다른 세대에 덜 묶여 살 자유도 포함되어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여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경제적인 독립 외에 육체적 정신적인 부분도 포함된다. 이것은 부모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자녀들이 성장하여 독립하고 나면 자녀들로부터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독립된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삶의 방식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는데.. 사람은 언젠가는 심각한 질병이나 노환 등으로 인해 독립적인 삶이 불가능한 순간을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치료나 수술 등을 통해서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를 말한다)


이럴 때.. 독립적인 삶을 원하지만 그걸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인데 현대사회는 불행하게도 그것을 '의학''기술'의 손에 맡겨 버렸다.


현대 의학과 기술의 발달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동물적인 생명의 연장'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사람으로서의 삶의 연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노화로 몸이 많이 쇠약해지거나 중증 치매 등으로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을 때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올 수가 없다. 대부분이 닫힌 공간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곳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추구했던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다. 질병과 노화에 대한 공포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니다. 그것은 '고립''소외'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처치와 수술로 생명을 연장시킬지는 몰라도 결코 삶의 질을 높이지는 못한다. 오히려 고통의 정도와 기간만 가중될 뿐이다.


실제로 연구결과에 의하면.. 심폐소생술을 받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중환자실 치료를 받은 말기암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마지막 일주일의 삶의 질이 훨씬 나빴다고 한다. 한편 완화치료 전담팀과 상담한 말기암 환자들은 화학요법 치료를 더 일찍 중단했고 호스피스 캐어를 선택했으며 삶의 마지막 단계에 고통을 덜 경험했다고 한다. 더욱이 놀라운 건 이들이 일반적인 연명치료를 한 환자들보다 더 오래 살았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인다면 좀 더 '인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구구팔팔이삼사

(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고 죽는 것)


얼마 전 국민 MC 송해 선생님의 부고 소식이 온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최근 TV에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을 보여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돌아가시기 전날 저녁식사까지 잘 드시고 주무시듯 가셨다고 하니.. 구구팔팔이삼사를 제대로 실천하신 분이 아닌가 싶다.


요즘은 웰빙(Well being)이 아니라 웰다잉(Well dying)의 시대라고 한다. 결국 웰다잉이 되려면 웰빙, 웰리빙(Well living)이 전제가 되어야 하겠지만 '죽음'이라는 명제가 3인칭이 아닌 '1인칭'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나면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건강 잘 챙기고 담에 만나자~"

"아무쪼록 건강 조심하십시오."

퇴직임원 모임을 마치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한결같이 하는 인사말이었다.


'그렇지 독립적인 생활을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건강이 최고야!'


나는 몇 잔 술에 조금 둔해진 정신을 가다듬으며.. 굳이 차를 타지 않고 하천변 산책로를 따라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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