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호 Aug 25. 2022

아기 호랑이



요즘 우리 집에 귀하디 귀한 VVIP 한분이 머무르고 계신다.

이 분은 세명의 몸종과 파트타임 일꾼 한 명을 두고 있는데.. 하루 종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시중을 받고 계신다.

바로 두 달 전 태어난 외손자 이야기이다.


배고플 때에도, 잠이 올 때에도, 기저귀가 젖었을 때에도 그리고 심심할 때에도 보내는 신호는 딱 하나.. 울음이다.

몸종들은 그때마다 정신이 없다.

머리를 재빨리 굴려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을라치면 울음소리가 가파르게 올라가고.. 진정시키느라 한참 애를 먹는다.


아이를 둘이나 낳아서 키웠는데 아내나 나나 어떻게 키웠는지 전혀 기억이 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아이를 처음 낳은 딸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이고.. 아이가 울 때마다 세명 다 허둥대는 판국이다.




요즘은 우리 때와 달라서 젊은이들이 연애는 해도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결혼은 해도 아이는 낳지 않으려고 하고.. 아이는 낳아도 두 명을 낳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1에도 못 미친 지 오래되었다. 즉 여성 1명당 평생 자녀 1명을 낳지 않는다는 의미다.

'집단 자살'로 가는 사회라고 한다. 이대로 다가는 인구 전부가 소멸할 것이므로...


아이가 귀하다 보니 집집마다 아이 하나에 온 가족이 달라붙게 되는데.. 실제로 아이 하나 키우는   보통일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아이 한 명당 세명은 필요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 살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집안 청소도 안되고 빨래는 밀리고.. 삼시세끼는 언감생심이다.

아침은 간단하게 빵이나 시리얼로 때우고.. 점심과 저녁은 배달 음식이다.

이게 사는 건지...


그나마 풀타임 몸종이 세명이나 되는 우리 집은 나은 편인데..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산모의 경우는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산모의 대다수가 출산 육아 스트레스로 잠깐 동안이라도 우울증을 겪는다고 하는데.. 산모는 물론 친정엄마까지 우울증이 온다고 한다.


정부에서 여성가족부를 해체한다고 한다.

내 생각엔 여성가족부를 해체하는 게 급한 게 아니고 '유아아동부'를 신설해야 할 판이다.


'아이를 낳기만 하세요. 육아는 정부가 책임지겠습니다~!'

이런 자세로 국가를 경영해야 한다.


'정부는 쓸데없는데 세금 낭비하지 말고 국가의 미래인 아이를 키우는데 집중하라~!'

..고 씨알도 안 먹힐 두리를 해본다.




어린아이는 그야말로 천사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


손자는 자식 때와는 또 달라서 열 배 스무 배 더 귀엽고 사랑스럽다.

웃는 모습뿐만 아니라 우는 모습도 귀엽고 가만히 멍 때리고 있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똥을 싸도 귀엽고 잠투정한다고 보채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별로 말이 없고 무뚝뚝한 성격인 나도 아이 앞에서는 온갖 표현과 몸짓이 절로 나온다.


아내는 딸이 낳은 아이가 찐 핏줄이라고 한다.

아빠는 씨 한 방울에 불과하지만.. 엄마의 뱃속에서 엄마의 자양분으로 태아피와 살과 뼈가 자라 때문에.. 자기가 낳은 딸이 낳은 외손자가 찐 핏줄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딸이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면 '성격 나쁜 건 아빠를 닮았다'고 한다.

성격은 씨 한 방울에 묻어서 나 보다..!


올해 6월에 태어난 손자는 임인년(壬寅年) 생으로.. 동갑내기 우리 부부와 딱 60년 차이가 나는 같은 임인년(壬寅年) 호랑이 손자이다.

'우리는 호랑이 가족~ 호랑이끼리 잘해보자~!'라고 아이한테 속삭이면서.. 노래는 뚜뚜루루루~ '상어가족'다.





아내가 첫째 딸을 출산했을 때..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했던 말이.. "이제 절대로 아이를 낳지 않을거다~!" 였다.

그러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3년 뒤 아내는 둘째 아들을 출산하였다.


젊었을 때는 잘 못 느꼈는데.. 나이 들어 보니 가족, 자식에 대한 소중함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늙으면 남는 건 자식뿐이라는 말이 있는데.. 어른이 되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순리대로 평범하게 사는 게 최고의 행복이 아닌가 싶다.

(혹자는 자식은 웬수고 남는 건 마누라뿐이라고 하는 분들도 다. 그러다 황혼이혼 당하고 나서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한탄한다. 있을 때 잘하자.)


요즘은 부모 자식 간에도 아이를 낳아라 말아라 간섭하기가 조심스럽다.

다만..

힘들었던 첫째의 출산과 육아 과정을 서서히 잊어버리고 둘째 보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할 뿐이다.

기억력은 엄마를 닮아서...



<끝>






매거진의 이전글 기다림.. 빵을 만들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