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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Sep 30. 2017

詩, 가을

드림파크의 가을 풍경과  시(詩)






올 가을에 나는  

- 김미선   



올 가을에 나는
조금씩 바뀌어가는 나뭇잎 사이에
일렁이는 고운 볕이 되고 싶다  


올 가을에 나는
새벽 숲에 나는 작은새들의 합창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곱고 부지런한 햇살이고 싶다  


올 가을에 나는
사람답게 숨쉬고 있음을 소박한 이웃들 이야기로
작고 소박한 행복이 담긴 글 향 지어 사랑을 전하고 싶다  


올 가을에
나는 양지바른 따스한 골목어귀에서
고사리 손가락으로 공기돌 던져내는 아이의
까르르 웃는 웃음 속에서 흔들리는 바람이고싶다

 

올 가을에
나는 가을비를 맞으며 노오란 장화 신고
걸었던 유년의 마당으로 가고 싶다  


올 가을에 나는
유년의 뜨락에 피워내던 아지랭이같은 꿈들을
작은 들꽃속에 감추워 두었던 그 고운꿈들을
하나씩 들춰내어 휘파람 불며 황금빛 들녘을 거닐고 싶다  


올 가을에 나는
하늘아래 펼쳐진 들녘이 한 마음으로 노을빛에 잠길 때
오래전 친구들 이름 하나씩 들꽃속에 꼬깃꼬깃 접어두고
먼지나는 신작로 타박타박 걸어 내 어머니의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는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가을 낮

-이봉춘



가을 낮,
햇살이 뜨겁게 나뭇잎에 앉았다.
깜짝놀란   
 나뭇잎 얼굴 붉어지고
 바람도 발을 멈춘
 가을 낮                  



 가을

- 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 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 말 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 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보내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만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네오로맨티시즘

- 조병화



가을날 가랑잎이 물에 떠서

흔들리듯이

시든 들꽃이 벌판에서 바람에 쏠려

흔들리듯이

나뭇가지 끝에 남은 한 잎이 구름에 떠서

흔들리듯이

아, 가난한 목숨이 죽음에 떠서

흔들리듯이


비 내리는 이 도시의 저녁

내가 나에 떠서 흔들리는 가을



가을 바람
- 최영미



 가을 바람은 그냥 스쳐가지 않는다
 밤별들을 못 견디게 빛나게 하고
 가난한 연인들 발걸음을 재촉하더니
 헤매는 거리의 비명과 한숨을 몰고 와
 어느 썰렁한 자취방에 슬며시 내려 앉는다

 그리고 생각나게 한다

 지난 여름을, 덧없이 보낸 밤들을
 못다 한 말들과 망설였던 이유들을
 성은 없고 이름만 남은 사람들을

 낡은 앨범 먼지를 헤치고 까마득한 사연들이 튀어 나온다
 가을바람 소리는 속절없는 세월에 감금된 이의
 벗이 되었다 연인이 되었다

 안주가 되었다

 가을 바람은 재난이다.



불편과 고독                                          

- 박노해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살며시 세상을 빠져나와
홀로 외로움을 껴안아라
얼마나 깊숙이 껴안는가에 따라
네 삶의 깊이가 결정되리니

불편함이 찾아올 때면
살며시 익숙함을 빠져나와
그저 불편함을 껴안아라
불편함과 친숙해지는 만큼
네 삶의 자유가 결정되리니

불편과 고독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것
불편과 고독의 날개 없이는
삶은 저 푸른 하늘을 날 수 없으니

굽이 도는 불편함 속에 강물은 새롭고
우뚝 선 고독 속에 하얀 산정은 빛난다.



오매 단풍 들것네           

 - 김영랑

 


오메,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메,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졍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메, 단풍 들것네



조용한 일

-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 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앉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가을

- 김지하



어지럼증을 앓는 어머니 앞에
그저 막막하더니
집을 나서는데
다 시든 낙엽을 밟으니
발바닥이 도리어 살갑구나.




가을바람  

- 김혜영



가을하늘 파란도화지에

구름 색연필로

그림을 그립니다.


구름으로 그리는 엄마 얼굴

구름으로 그리는 아빠얼굴


가을바람 살랑 와서

구름엄마 구름아빠 데려가도

괜찮아요

또 그리면 되잖아요.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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