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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Jul 18. 2018

보석처럼 빛나던 소금 수레

영광군 두우리 염전(鹽田)에 가다.









뉴스에서는 폭염주의보가 전해오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들이다. 가을바람 서늘할 때까지는 가만히 있을 거야 말했었다. 날마다 새벽에 잠깐 나들이처럼 동네 근처에 두어 시간 나갔다 오는 출사도 이젠 돌아오는 길이 무더워서 주춤하던 중이다. 그런데 염전은 가보고 싶었고 기회가 되면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전남 영광의 두우리 염전으로 달릴 때는 한낮의 무더위가 가라앉고 해넘이도 머잖은 시간이었다. 염전이라는 생각에 바다와 갯벌을 떠올리지만 가는 길의 논과 밭은 여름 농사가 익어가는 들판이다. 넓은 밭 가득 심은 파 모종이 덜 자란 채 더위에 시들시들하다. 시원하게 비 한 줄기 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판의 흔한 논밭처럼 차츰 갯벌이 나타나고 멀리 바다도 보이기 시작하는 걸 보니 염전이 가까워지나 보다.

'영광'이라 하면 우리 입에 '굴비'란 말이 저절로 따라붙는 곳인데 영광군에는 우수한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이 밀집해서 넓게 펼쳐져 있다. 지명조차도 영광군 염산면이다. 염산(鹽山)이라는 소금을 칭하는 땅이름으로 쓰이는 곳이다.


오후가 끝나가는 시간에는 염전의 일도 끝나가는 시간이었다. 일하는 염부들이 많지 않았다.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그분들에게 다가가 셔터를 누른다는 게 영 미안하고 편치 않은 마음이다. 그분들은 의외로 익숙한 듯 심드렁한 모습이다. 상관없이 소금 수레를 밀고 나르고 하더니 훌훌 가버리신다. 다시 버스를 타고 다른 염전으로 옮겼을 때는 날이 저무는 중이었다.  


문득 생각난 것이 내가 어릴 때 각 지역의 특색이나 특산물 공부 중에 염전(鹽田)도 있었다. 나주의 배, 성환은 참외.. 이런 식으로 수십 년 전 교과서에서 염전은 주안이었던 게 선명이 떠올랐다. 찾아보니 정말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제염이 1907년 경기도 부천군 주안에서 시도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전라도의 소금밭에서 잠깐 어릴 적 주입식 교육의 기억이 느닷없이 떠오르는 재미도 있다.  


천일염은 자연 방식대로 생산되기 때문에 기온과 기후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더욱 생명력이 넘치는 환경이 염전이다. 지금처럼 장마가 그친 7~8월엔 장마로 바닷물이 한 번 정화되고 염전이 깨끗하게 씻긴 후가 좋다고 한다. 이때 여름철의 뜨거운 햇볕과 좋은 바닷물과 맑은 해풍이 만들어낸 천일염은 굵고 깨끗하게 생산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곳 영광군의 염전들이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갯벌은 진흙과 모래가 적절히 배합되어 있고 일조량과 바람도 적당해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소금이 맛의 원천이기에 좋은 소금은 건강과 연결이 된다. 특히 아기가 세상에 갓 태어나 엄마젖을 먹고 이유식과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가능하면 유아 반찬의 첫 소금 간을 최대한 늦추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염분이 몸에 안 좋다고는 하지만 또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맛의 기본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 번 간을 한 음식의 맛을 알아버린 아기는 간이 되지 않은 음식은 뱉어내기 시작한다. 당장 소금 간의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때부터 인간들은 죽을 때까지 소금 맛의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우리 갯벌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염전이 노을에 물들기 시작한다. 소금밭을 밀던 고무래를 세워두고 소금 수레를 밀며 부부는 소금창고로 향한다. 이제는 소금 만들기도 쇠락해서 젊은 염부들이 많지 않다고 한다. 묵묵히 소금밭을 가꾸고 수북이 담긴 소금 수레를 함께 밀면서 부부는 서해안의 일몰 속으로 잠겨간다. 어둠 속에서 보일 듯 말듯한 부부의 아름다운 뒷모습에 그림처럼 노을빛이 따라가면서 비춘다. 


그리고 텅 빈 염전에는 바닷가 사람들의 삶의 편린들이 소금밭 곳곳에서 너울거리고 그들의 땀의 결정체가 담긴 수레 안 가득 쌓인 소금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서해안 고속도로 영광 IC 또는 호남고속도로 정읍 IC에서 내려 고창을 거쳐 영광.
함평 방면(23번 국도) - 영광읍 외곽 칠거리 - 군서면 방면(808번 지방도) - 염산면 소재지에서 두우 해수욕장 방면으로 우회전(77번 국도) - 두우리 –

*또는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 두우리 187-16 장수 염전. 이 주소로 가면 이 외에도 밀집해 있는 또 다른 많은 염전들을 볼 수 있다.








추가 사진으로 조금 더 보기~

소금밭 두우리 가는 길


고무래를 밀며 묵묵히 소금밭을 왔다 갔다 하면서 무수한 물너울의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을 생각해 본다.



탕 빈 염전

모두 떠나가는 시간이다.


이제는 작업조차 하지 않는 소금밭도 있다.

아직은 덮여있거나

함초와 같은 소금풀이 자라는 곳도 생겨난다.  


배부른 듯 불룩하게 수북하게 담긴 소금 수레가 뿌듯하다.

막 염전에서 건져 올린 각진 소금의 결정체가 마치 살아있는 듯하다.

신선함 그 자체다. 그리고 이렇게나 이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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