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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Dec 27. 2018

겨울바람 속으로
진해 근대문화역사길을 걷다.

그리고 보타닉 뮤지엄의 따사로운 겨울







진해 적산가옥 카페 '팥이야기' 입구의 포인세티아


같은 겨울이어도 남쪽의 겨울은 다르다.

봄바람에 벚꽃이 눈부시게 날리는 풍경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진해의 겨울은 포근하다는 느낌이다. 벚꽃 개화를 알리는 소식이 전해지면 꽃구경과 사람 구경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온 도시가 들썩이는 곳.


이 도시에 오면 벚꽃보다 먼저 오래전 내 친구가 생각이 난다. 해군사관생도와 연애하고 결혼해서 한동안 진해에 살았던 친구가 벚꽃이 피어나는 계절이면 "꽃이 피기 시작했어. 한 번 내려와~" 해마다 하던 말이었지만 아쉽게도 한 번도 그 부름에 달려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낯선 도시에 적응 못하고 늘 엽서에 그 마음을 적어 보내던 내 오랜 친구가 한때 살았던 곳, 그 길을 걸으면서 내내 친구가 이곳에서 지냈을 시간을 떠올렸다.


이젠 벚꽃구경만으로 끝내지 않고 역사 깊은 진해의 근대문화역사길을 걸어보는 것도 의미 있다. 

두 어시간 정도 걸으면서 진해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근대문화유산을 접하며 옛 숨결을 직접 느껴본다면 더없이 충만한 여행이 될 것이다.


먼저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해군의 집>에서 시작해 본다.

  

일단 발걸음을 시작해서 곧바로 근처에 우뚝 선 <충무공 이순신 동상> 앞에 선다.

큰 칼 옆에 차고 남해를 굽어보는 모습이 늠름하다. 수군을 지휘하며 바다를 지키던 수군통제사로서의 용맹함을 짐작해 본다. 북원로터리의 이순신 장군 동상은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졌고 얼굴 모습이 가장 근접하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진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어지는 곳이 지금껏 진해의 문화 명소로 자리매김하는 <문화공간 흑백>이다.

2층짜리 적산가옥을 개조해서 만든 <흑백>은 1912년에 건립되었다. 당시 작곡가 이병걸이 운영하던 고전음악다방을 유택렬 화백이 인수했다. 그 후 흑백다방으로 이름을 바꿔 음악회와 미술 전시회를 개최하며 60, 70년대에 진해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다. 유화백 시절부터 인기 있던 모카커피의 맛을 기억하는 여행자들이 지금도 찾아온다고 한다. 현재는 피아니스트인 그의 딸 유경아 씨가 문화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영화 '화차' 촬영지라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더 나은 환경을 위해서 내부수리 중이었다.

카페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던 유경아 씨의 지인께서 유학 중 만나 결혼한 외국인 부인을 소개한다. 매력적인 부인이 찻잔을 들고 창가에 나오니 남편께서 자랑스럽게 손잡는다. 이쁜 부부~



조금 더 걸어가면 진해 중원로터리 건너편에 1912년에 지어진 <창원 진해우체국 (사적 제291호)>이 있다. 진해 군항마을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도 있다.


백 년이 넘은 목조건물인데 러시아풍의 근대건축으로 이 지역에 러시아 공사관이 자리 잡고 있었던 까닭이라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즉시 연결되는 지금과는 달리 우체국에 나와서 소식을 담은 손편지를 보내던 옛사람들의 애틋함을 상상해 본다. 2000년까지 우체국으로 사용했다. 배우 손예진이 나오는 영화 '클래식' 속의 우체국이 이곳이다.

 


겨울바람 속에서 군항마을 테마공원을 지난다.

그 거리를 걷다가 오래된 찻집 앞에 멈추거나 길거리에 서서 낡은 간판도 읽어본다. 옛 건물에 붙어있는 간판을 훑어보는 중에 세월이 느껴지는 글씨체가 있다.


< 원해루(元海樓)> 이승만 전 대통령의 방문, 그리고 수요 미식회와 영화 '장군의 아들'을 촬영하기도 했다는 중국음식점이다. 1950년 대에 문을 열었는데 지금은 아들이 물려받아 운영 중이다.


건너편에는 <육각 지붕의 뾰족집> 수양회관이 보인다. 중국풍의 팔각 누각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 초소와 요정으로 사용된 곳인데 지금도 음식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이 두 곳 또한 100년이 넘은 건물이다.



그 길을 따라 다시 걸으면 그 옛날이 떠올려지는 적산가옥이나 <옛 골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심 거리와는 확연히 다른 옛 정취의 골목길이 문득 추억을 소환한다.


조금 더 가다가 사람들이 기웃거리기에 나도 들여다보니 그 옛날의 감성이 그대로 간직된 자그마한 카<포도나무집>이다. 그에 걸맞은 패션의 주인장이 환하게 웃으며 나온다. 적산가옥인 카페 '포도나무집'이나 '팥 이야기' 역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에서 편안히 잠깐 쉬어가도 좋겠다.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도시답게 길을 걷다 보면

군인 동상이나 군복 맞춤집과 수선집이 눈에 띄고 마크사 거리까지 있다.


중원 로터리 동쪽으로 바라보면 제황산 공원이 있다.

공원 정상에는 진해탑이 우뚝 서 있는데 그곳에 서면 해양도시 진해가 한눈에 펼쳐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역사를 담고 있는 진해 군항마을의 면모를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새롭다.


곳곳에 일제 침략의 상흔이 스며있는 근대사 거리를 한 바퀴 돌면서 이제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거듭난 모습이 대견하다. 아픈 상처도 남모를 기쁨도 함께 보낸 세월 속에서는 단단한 발판이 되어준다는 것을 느껴본다.

이렇게 세월이 켜켜이 쌓인 역사를 더듬고 있을 때 건너편 제황산 공원 진해탑 전망대를 향해 노란색 모노레일카가 올라가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는 진해다.





백김치와 함께 먹는 석쇠불고기 맛이 일품이었던 진해의 맛집








*진해 보타닉 뮤지엄 ( Jinhae Botanic Museum )


진해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자연환경이다.

전망 좋은 진해의 보타닉 뮤지엄은 따사로운 겨울볕이 내리고 있었다.


장복산과 천자봉이 둘러서 있고 정성들여 가꾼 식물들이 사계절 피어나는 보타닉 뮤지엄은 진해의 명소다. 눈이 내리고 엄동설한이 맹위를 떨쳐도 따뜻한 남쪽나라 진해의 보타닉 뮤지엄으로 가면 전망좋은 자연 속에서 훈훈하게 계절을 즐길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성탄시즌을 알려주는 산타와 키 높은 X-마스 트리가 맞는다.

입장 티켓은 자동발매기에서 매표를 할 수도 있고 안내 도우미의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도 있다.


따뜻한 온기 속에서 피워낸 꽃들이 겨울을 나고 있다.

친절한 이름 하나하나 읽어가며 다시 찾아올 봄날의 화사한 꽃잔치를 기대한다.


수로에서 뿜어내는 작은 분수의 곡선에서 반짝이는 빛망울이 눈부시게 이쁘다.


평화로운 산책길에 싱그러운 색감과 이쁜 조형물들이 생동감 있는 즐거움을 준다.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 속에서 홀로이 걸으며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즐긴다


언제나 사시사철 관리하는 분의 수고로움 덕분에 정원은 우리에게 늘 아름다운 자연을 제공한다.




보타닉 뮤지엄을 한 바퀴 돌면서 내려오는 길에 들었던 카페테리아,

식물들이 에워싼 정원을 바라보는 창가에 앉아 좋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거나, 넓은 창을 통해 진해 앞바다를 바라보며 쉴 수 있는 계단식 쉼터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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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중심인 연말인데도 따사롭기만 한 보타닉 뮤지엄이다. 조용한 산책이나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최적이다. 계절적으로 조금 썰렁한 감은 있지만 앞으로 더 나은 분위기를 위해서는 공원형 휴양형의 가든과 인스타그램 명소화도 필요할 때다. 겨울이 지나 수많은 꽃들이 피어나고 초록의 싱그러움이 가득해질 것이다. 점점 더 이뻐질 보타닉 뮤지엄이 기대된다.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 44-11 *055-264-4337 // http://www.jinhaebotanic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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