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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Oct 10. 2021

한옥마을에서 하루. 익산 함라한옥마을

가을 풍경 속에 호젓해 보기~






익산으로 떠나면서 그곳의 숙소를 검색했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어찌 된 게 이 시기에 빈방이 없다고 나오는 곳도 제법 있다. 시내를 벗어난 곳의 숙소를 클릭해 보았더니 한옥숙소가 있다. 이름도 생소한 '함라'라는 곳에 위치했다. 일단 통화를 해 보았다. 목소리를 들으니 예약을 해도 될 것 같은 느낌...

익산시에서 20~30분 정도 달려 해질 무렵에 도착,


<함라마을>엔 지나다니는 사람이 통 보이지 않는다. 한적하고 조용하다. 체크인하고 밖으로 나와 해저무는 마을 골목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농촌 지형을 그대로 살린 울퉁불퉁 돌담길의 자연스러움, 토담에 매달린 주먹만 한 호박과 노란 호박꽃, 가을을 알리는 담쟁이들의 뒤엉킴...


알고 보니 토석담이 주를 이루는 함라마을의 이런 토담, 돌담, 화초담 등의 전통 담장이 등록문화재 263호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 도 문화재로 지정된 함라 삼부자집의 조해영 고가, 김안규 가옥, 이배원 가옥 사랑채는 오래된 전통 가옥으로 토석 담장과 한옥 기와지붕 등이 어우러져 전통적 경관이 볼만한 곳이었다. 내가 돌아본 시간이 해질 무렵이었고 새벽 산책길 이어서 문이 열린 모습을 보지 못했다. (또는 코로나로 개방이 안되었을 수도)


참고로 함라 삼부자가 베푼 인심은 호남을 대표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숟가락 하나만 있으면 배고픔을 면할 수 있고 노잣돈까지 얻어 갔다는데, 당시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들이었다고 전한다.


세상이 온통 고요하다.

숙소의 7개 방 중에 나를 포함해서 아마 두 개쯤 든 것 같았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떠 아무도 없는 마당에 서니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정원의 꽃들이 선명하다. 잔디 마당을 걸으니 운동화가 촉촉해진다. 풀잎에 아침 이슬이 송송송... 한참 동안 혼자서 이슬 놀이하며 놀았다.



관리동 어른이 지나가다 바라보신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시며 이 먼데까지 무하러 왔냐신다. 이렇게 조용한 거 처음이라니까, "조용하기로야 예가 절간이지 뭐.." 하신다. 정말이다. 절간 정도다. 가끔 시끄러울 수도 있을 텐데 하루를 있는 동안 한 점 소음이 없었다.


  

마을 바로 위쪽으로 함라 향교가 함라 마을을 품듯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저녁 산책길에는 문이 잠겨 있어서 담너머로 까치발 세워 들여다보았는데 아침 산책 한 바퀴하고 돌아오다 보니 활짝 열려 있다. 홍살문을 지나 가까이 가 보았다. 들어가도 되는지 소심하게 기웃거리는데 구경 왔는감? 하면서 친절히 맞아주시며 향교 이야기를 들려 주신다. 이따가 10시에 제를 올릴 준비로 마당에 자리를 깔고 대성전을 청소하고 정리하느라 바쁘신 중인듯 했다. 예상치 못했던 향교에서의 뜻깊은 아침 시간이었다.


함라 향교는 조선시대 세종 19년에 세워졌다고 임진왜란을 겪으면 다시 우여곡절 끝에 선조 24년에 지금의 함라에서 약 1km 떨어져 있는 금곡(金谷)이란 곳으로 향교를 옮겨 세웠다가 조선말 순조 때 이곳으로 다시 옮겨진 향교라고 한다.



아주 오래된 느낌의 향교지만 이곳에서 꾸준히 제를 올리고 몇 가지 프로그램이 이어지다 보니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인 채로 여전히 실용적인 향교로 건재한채 이어져 오는 것 같았다. 어르신도 말하신다." 이게 우리 아버지 때도 있었던 향교지요. 그때도 지내던 제를 지금까지 빠짐없이 이렇게 지냅니다." 점잖고 선한 인상으로 꼭 존대어를 해주신다.


"이따 열 시에 오면 사람들이 제복을 입고 예를 올리는데 구경하고 싶으면 그때 다시 와 봐요" 했지만 아홉 시 반에 거길 떠나야 해서 아쉽게도 결국 못 가고 말았다. 현대인들은 참 별스럽지도 않은 시간의 규제에 스스로를 얽매어 산다. 쩝~



조식은 먹기로 미리 예약했는데 석식도 예약할걸 그랬다. 지난 밤엔 동네에 저녁 먹을 곳이 없어서 자동차를 타고 어둠 속으로 나갔었다. 이곳 동네 어르신들이 해주시는 석식이 있었는데 그걸 몰랐다.


허균(許筠)의 함열 유배시절인 1611(광해군 3) 허균이 전국 팔도의 식품과 명산지에 관하여 적은 서적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저술했는데, 함열 관아 객사터 가까운 곳이 허균 선생의 유배 생활공간이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바탕으로 이곳 함라 숙소의 식당 이름을 '도문대작'이라고 했다는 것.

 


그냥 시내의 흔한 호텔에서 묵었다면,

온돌의 맛과 덜컹거리는 이중창호문 여닫이도 못해봤을 것이다. 아침 이슬 촉촉한 담장이 이어진 멋진 아침 산책도, 여유롭게 새벽 정원의 이슬 놀이도 하지 못했을 테고. 수수한 집밥 아침밥상도, 점잖으신 향교 어르신도 못 뵈었을 텐데... 뚝 떨어진 교외로 조금 더 달려서 갔던 조용한 한옥 마을의 하루가 다녀오고 나니 기억 속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남아 있다. 호젓해 보기의 진수, 내겐 확실한 힐링이었다.



턱없이 비싼 고가의 한옥 호텔과는 달리 시골마을의 평온한 분위기에서 지낸 마음 따뜻했던 하루, 느낌이나 취향은 사람마다 다를테니  호불호 역시 다를터.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던 시간이어서 괜히 혼자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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