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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May 03. 2024

초여름 해미읍성과 개심사

서산, 해미읍성과 개심사 청벚꽃







거길 막 들어서니 반기는 글귀

-어서 와, 해미읍성은 처음이지?

처음은 아니지만 밝은 모습의 폰트로 반겨주니 기분이 좋아진다. 서산에 갔다면 다시 한번 들르지 않을 수 없는 곳 해미읍성(海美邑城)이다.


읍성(邑城)은 대부분 외세의 침략에 대비해 쌓은 성으로 알고 있다. 해미읍성도 그런 이유로 평야지대에 쌓은 성이다. 이와 함께 해미읍성에는 또 하나 특별한 이야기가 담겼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천주교는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구되었는데 점점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선비들의 천주교 반대의견이 맞서기 시작한 것이다.


천주교의 박해가 심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 해미읍성에서는 천명이 넘는 천주교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름 없는 신자들이 형장이 되어버린 해미읍성에서 처형당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디론가 끌려갔다.


당시 천주교 박해를 기억하는 회화나무(호야나무)가 남아있다. 해미읍성은 아픔이 담긴 이 땅의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다.


포졸이 지키는 진남문을 지나면 너른 땅이 가슴을 뻥 뚫어준다. 평지 위로 바람이 불어오고 햇살이 쏟아진다.


이 성의 축조를 지시한 왕은 조선 태종이다. 높이 5m에  길이 1800m, 성 안 쪽의 넓이는 2만여 평이다. 한때 충무공 이순신도 충청병사로 근무했던 곳이라 한다.  


잔디밭 위를 걷다 보면 투호나 장기 등의 놀이를 해볼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서 심심찮다. 조선시대를 재현한 듯 분위기의 마을도 있다. 내아, 동헌, 객사, 전통 주막이나 찻집도 보인다. 


민가 몇 채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오간다. 옛 모습의 정겨움이 끌리는가 보다. 조선시대의 부농이나 말단관리, 상인들의 집을 재현해 놓았다.


예전에 왔을 때는 한복을 입으신 할머니께서 다듬이질을 하고 있었는데 이날은 안 계셨다. 아마 시간이 맞지 않았던지..   


108 계단을 올라야 하는 청허정 옆의 동헌 안에 드니 고즈넉하다. 참 아름답고 단아하다. 시간이 많다면 동헌 마루에 걸터앉아 한나절 멍하니 앉아있고 싶은데...


잘 생긴 소나무가 서 있는 귀빈 숙소였던 객사도 정갈하다. 소나무 아래 돌의자에 잠시 쉬어도 보고.



미스터선샤인 촬영 지였다고도 한다. 무슨 장면이었을까. 담장에는 초여름 꽃이 희고 노랗게 피어났다. 해미읍성은 잔잔했다.





-개심사(開心寺)

꼭 청벚꽃 때문만은 아니었다. 깊은 숲 속에 들어보고 싶었다. 그런데도 개심사를 갈까 말까 잠깐 망설였다. 땀 뻘뻘 흘리며 돌계단을 한참 올랐던 기억이 있어서... 암튼 거길 올랐다. 남들은 뭐 어려운 길이라고 할 테지만 등산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꾸역꾸역 오르는 일은 내키지 않는 편이다 보니.


종교와 상관없이 산사는 늘 좋다.

꽃구경 온 사람은 많았지만 고적하다. 깊은 산속 옹달샘의 한 모금도 달고, 슬쩍 스치는 바람도 좋다. 사계절 숲은 달라져도 오래된 지붕과 풍경소리도 문살과 문손잡이도 여전하다.


초파일을 앞둔 절마당에는 연등이 화려하고 절 기와에 마음속 기원을 적는다.



청벚꽃은 조금씩 떨어지지만 또 다른 풀꽃이 피어나고 담장 위로는 잡풀이 삐죽삐죽 솟고 벌이 윙윙거리며 난다. 팔작지붕아래 두 손 모으고 차분해진 마음으로 점점 짙어지는 숲에 파묻힌 채 비탈진 길을 걸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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