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마을에 새 바람을...
시대를 담는 최고의 사진작가와 함께하는 도시 사진 멘토링 워크숍 참가자 모집
2017년 '사라질 서울의 마지막 풍경'을 주제로 국내 최고의 사진작가와 멘토링 워크숍을 통해 과거에서 현재까지 다양한 서울의 모습을 발견하고 촬영할 <사랑방워크숍-도시 사진전> 시민참가자 모집이었다.
이런 의도와 진행이 마음을 끌었고 암튼 그렇게 사진 수업은 시작되었다.
서울시청 지하로 내려가면 이런 시민청이 있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1시~6시, (그러나 이 시간이 끝나면 뒤풀이가 있기도(없기도) 하다)
첫날의 수업지도는 성남훈 작가다.
파리 사진대학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하고 작가로 활동 중이며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기도 한다는 말씀.
슬라이드로 다양한 작품 활동과 작품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내겐 소중하다.
때때로 이렇게 사진에 대한 정체성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늘 이런 시간을 찾아다닌다.
이 날 5시간 동안 작가님의 작품세계를 1g이라도 배워갈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번의 프로젝트는 '사라져 가는 서울의 풍경'이었다.
이름하여 Remember seoul이다.
그리고 실내 수업 이후 이날의 외부 현장수업은 북정마을이다.
김광섭 시인이 노래한 성북동 비둘기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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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산에 번지(番地)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廣場)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祝福)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중 첫 연
지하철 4호선 한성대역 6번 출구로 나와 초록색 마을버스를 타고 북정마을 노인정 앞에서 내리면 된다. 순간 눈 앞에 아주 오래된 마을이 펼쳐진다. 복잡하게 뒤엉킨 전봇대 위의 전깃줄이 이 마을의 인상을 알려주는 듯하다. 낡은 집들과 골목이 세월을 이야기하고 이 마을의 분위기를 먼저 전한다.
건너편으로 성곽이 보인다. 나는 일단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서 꼭대기부터 내려오기로 했다. 가파른 계단과 좁은 골목길을 따라 성곽까지 올라갔다. 성 벽에 서서 내려다보니 오래된 북정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더 멀리 바라보니 서울시내도 보인다. 흔히들 부자마을로 일컫는 성북구 동네가 옆에 있다. 성문 저 쪽 넘어가 보니 아파트들이 보인다. 마치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갈듯한 옛 동네 북정마을과 이미 개발된 빌딩과 아파트들이 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눈에 들어온 북정마을은 따뜻한 우리네 옛정이 느껴지는 아늑함이 있다.
마을의 가장 높은 성곽에 올라서 먼저 마을과 서울시내를 내려다보며 바람에 땀을 식혔다. 그리고 천천히 살피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방치된 폐가가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길 옆 텃밭에 채소가 자라고 작은 안마당엔 정갈한 장독들이 있고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가 우뚝 서 있기도 했다. 골목의 담벼락엔 푸릇푸릇 잡초가 자라고 녹슨 대문 안엔 깨끗한 빨래가 뽀송뽀송 말라가고 있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삶의 현장이다. 빠르게 변화해 가는 문명 속에서 어서 빨리 변모해야 할 것처럼 재촉하며 등 떠미는 세상과는 상관없이 무심히 살고 있는 이 마을이 의연해 보인다.
마을 아래로 내려와 심우장으로 가는 골목에 들어섰다. 만해 한용운 님의 거처였던 곳. 집의 방향이 돌아앉은 모습이다. 이를테면 북향인 것이다. 조선총독부를 등지기 위해서 남향으로 짓지 않고 북향터를 잡았다는 이야기다. 볕이 들지 않는 북향의 집에서 불도 때지 않고 겨울을 견뎠다고 한다. '조선 전체가 감옥인데 어찌 불 땐 방에서 편안히 지낼 수 있는가'라는 말씀에 저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된다.
심우장은 북정마을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 코스이다 보니 사람들이 마루에 앉아있거나 늘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는 만해 선생의 님의 침묵을 비롯한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방이나 부엌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만해 한용운 님은 아쉽게도 해방 한 해 전에 생을 마감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심우장을 나와 주변의 조붓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길고양이들이 돌아다니는걸 자주 볼 수가 있다. 가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가게 앞에 앉아계신 걸 볼 수가 있다. 그 외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편이다. 시장을 다녀오는 어머니들이 힘들게 비탈길을 올라간다. 바라보면서 그 발걸음의 무게가 느껴진다.
한양도성과 성곽이 인접해 있어서 멋과 품위조차 느껴지는 오래된 동네,
이런 성곽과 옛 향기가 스며있는 문화재 보존을 위해 다행히도 재개발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마을 아래쪽에는 예술가들이 모여들어서 공방이 생겨나고 연극 포스터가 바람에 날린다. 이런 새 바람들이 이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렇듯 새로운 변신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서울의 옛 모습 속에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북정마을이 변모하고 있다. 현대 사회와 잘 어우러지면서도 푸근한 옛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 우리들이 할 일이다. 봄날이 가고 있는 북정마을에 또 다른 봄이 기다리고 있으리..
이제 거길 내려와야 할 시간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내려오는데 성남훈 작가님께서 "이대로 헤어질 수 있나, 막걸리라도 한 잔 하자" 고 제안하셔서 대학로 골목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막걸리 잔을 주거니 받거니, 열띤 토론을 하며 사진이야기로 뜨거웠던 아, 행복했던 시간~ 뿌듯한 하루.
한양성곽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어서 든든하기까지 한 기분.
성곽의 다른 쪽으로 길을 잠깐 걸어보았다.
이 길을 따라 한양 안쪽으로 또는 바깥쪽으로 오갔던 조상들처럼 느낌이 오도록~ㅎ
성 벽을 통해 북정마을을 들여다본다.
저 안에 성북동 비둘기도 날고, 만해 한용운 님이 나라 걱정을 하며 살았을 것을 상상해 본다.
이 지역 사람들의 걷기 코스로 잘 이용되고 있는 듯했다.
성곽길이 산책코스고 운동길인 이 마을 분들의 멋진 길이다.
마을이 봄을 맞아 기지개를 켜고 여름을 맞고 있다.
마을로 내려가는 골목에 집을 비우고 아사나 간 분들이 남긴 살림살이와 돌담 벽에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시간은 그렇게 간다.
콩할머니 집에 콩 할머니께서 들어가신다.
들어가는 입구의 등나무가 점점 자라 곧 아치를 이루겠지.
만해 한용운 님의 심우장으로 접어드는 골목길.
집 안을 들여다보며 그분의 생활도 생각해 보고...
놀러 와서 다리도 쉬고 사진도 찍고~
골목을 걸어 올라가며 하늘도 올려다보고
저 아래 마을도 내려다보며 이 세상 어디쯤에 내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낮엔 빈 집이 많다.
버스 정류장 평상에 동네 어르신들만 삼삼오오 모여서 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본다.
이런 수업을 하면서 사진의 다양성을 배우고 또 다른 깨우침을 하나쯤 얻어간다면 더 바랄 게 없는 하루겠지.
북정마을을 내려와 뿌듯하게 뒤풀이를 했던 포장마차.
행복했던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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