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필적 가해자가 되어버린
#intro
30대 중후반을 달리고 있는 필자는 남성우월주의도 아니고, 페미니스트도 아니다.
평범한 남자로, 남자로서 한국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마음껏 누리면서 미안한 마음도 있는...
최근 필자는 책 한권에 막혀서(아주 두꺼운) 독서 진도가 안나가고 독서에 대한 답답함이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딸이 커감을 보며, 장모님의 헌신을 보며, 워킹맘을 하는 마누라를 보며, 한국 여자의 어려움에 애잔함을 느끼고 있었다.
느끼긴 하지만 딱히 뭔가를 하지 않는게 함정이지만...
책이 안읽히던걸 멈추고, 읽은 두 책은 그야말로 스르륵 읽히는 문체를 가지고 있었다.
진작 두꺼운 책을 집어 던졌어야지라고 생각하게 해준 좋은 타이밍.
그리고 아마도 인생에 여자란 존재에 대한 애잔함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는 걸 미리 알려두고자 한다.
책을 읽을 당시의 Context도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 편이다.
노래와 영화처럼 어떤 상황에서 읽었느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다르다.
개인적으로 영화는 어린날에 본 미녀와 야수가 베스트였고, 덕분에 최근에 나온 실사판에서도 울뻔한...
노래도 10대 후반 ~ 20대 초반의 노래들이 인생 곡들인 경우가 많다.
시련의 아픔을 함께 했던...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조남주 작가
작가의 생각, 사상(?)을 전달하기 위해 소설이라는 장르를 택했을 뿐, 오히려 SEWOL X와 같은 느낌이다.
평범한 지영이의 삶을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취업준비생, 직장, 결혼 후 로 나눠서 담담하게 폭로한다.
여성의 삶에 스며들어 있는 소소한 차별적 요소들을 풀어놓으면서, 여성들에게 말한다
뭘 공감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 아무거나 골라 공감해봐
소설적 내용을 기대한 독자에겐 큰 실망이지만, 82년 언저리의 여성에게는 그야말로 격공을 일으킨다고 한다. 특히 결혼후 애를 가진 어린 엄마 위주는 격격공...
미필적(?) 가해자인 필자는 "개안"이 되었다.
일단 주위에 암암리에 일어나는 "미필적" 차별이 보이기 시작하고, 내가 조심을 하게 되었으니 아마도 작가의 목표는 성공한 듯 하다. (책도 많이 팔린듯 하니...)
어머니가 교대 얘기를 꺼내자 김은영씨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싫다고 했다.
"난 선생님 되고 싶지 않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단 말이야. 그리고 내가 왜 집 떠나 그 먼 대학에 가야해?"
"멀리 생각해. 여자 직업으로 선생님만 한게 있는 줄 알아?"
"선생님만 한게 어떤 건데?"
"일찍 끝나지, 방학있지, 휴직하기 쉽지. 애 키우면서 다니기에 그만한 직장 없다."
"애 키우면서 다니기에 좋은 직장 맞네. 그럼 누구한테나 좋은 직장이지 왜 여자한테 좋아? 애는 여자 혼자 낳아? 엄마, 아들에게도 그렇게 말할 거야? 막내도 교대 보낼거야?"
마지막 한문장이 쿵.
개인적으로도 선생님이 꿈이었지만, 남자가 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는 알수 없는 생각에 고등학교때 접었다.
아마도 10여년을 가져온 꿈을 아무 이유없이 접었으니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outro
2017년 오늘 아이를 키우는 것은 더이상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사회가 분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금씩 변화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이들을 부모가 키우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풀기 어려운 숙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더이상 여성의 커리어를 육아라는 이름으로 끝낼 수 없는, 끝내서는 안되는 사회다.
개인의 판단으로 육아에 전념하는 것은 선택이지만, 이 선택권은 모성애라는 우산안에 여자에게 굴래가 되는 분위기에 대한 변화는 우리 세대가 받은 중요한 숙제이다.
우리 세대가 조금은 풀어놔야 우리 다음 세대가 지금처럼 먹먹하게 육아와 일 사이에서 해매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