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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앨리스 Dec 07. 2019

내가 책육아하면서 육아가 힘들었던 이유


나는 아이가 원할 때마다, 원하는 양만큼 책을 읽어준 엄마는 되지 못한다.

내 부모와 책으로 대화를 나눠본 적도, 내부모 품에서 동화책 한 권 읽어본 기억도 없는지라 내 아이에게 책을 내 품에서 내 목소리로 읽어준다는 것은 내 안의 내면아이의 질투심에 따른 거부반응을 불러왔다.

책육아의 세계에 잠시라도 발을 담가본 사람들은 안다.

책 그거 그냥 읽어주면 되는 것 아니냐 쉽게 생각하지만 아이의 눈빛을 따라가 아이가 만족할 때까지 읽어주는 것은 부모의 체력적인 한계와 내면의 상처의 한계를 함께 마주해야하는 쉽지 않은 것이 책육아이다.

그래서 나는 책 읽어주는 것이 그저 편하지는 않았기에 내가 읽어줄 수 있는 선에서 읽어주었고, 그저 집안환경을 책과 함께 클 수 있게 조성해줄 뿐이었다.

하은맘도,푸름이아버님도 책육아보다 먼저 우선시 되어야할 것이 배려깊은 사랑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눈빛에 따라 아이가 원하는 책을 끝장보게 읽어주지는 못했지만 나의 정신상태가 온전할 때는 내 아이의 사랑통장에 찰랑찰랑 배려깊은 사랑을 저축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내가 컨디션 조절못해서 기껏 저축해둔 배려깊은 사랑통장을 해지할 지경이 된 적도 많고, 잔액 0원으로 만든 적도 많다.

그래도 하은맘의 말대로 최대한 나의 몸 컨디션 조절에 신경을 썼고, 사랑통장에 저축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빼먹더라도 사과하고 눈물닦고 다시 채우려고 노력했다.

지난 7년간 나는 그저 책육아에는 발만 담그고, 배려깊은 사랑도 어설프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려 했을 뿐이다.

내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자아가 강했다. 자기 의사표현이 분명했다. 자기 감정표현도 날 것의 그대로 거리낌없이 드러냈다.

그런 나의 아이를 양가 가족들은 나의 육아법에 비난을 했다.

니가 오냐오냐하니 애가 더 그런다 하였다. 니가 애초에 애 고집을 못 꺽어서 그렇다고 앞으로는 더 심해질텐데 어쩌냐고 했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애 고집은 일찍감치 꺽어야 한다고 하였다.

심지어 내 아빠는 자기 집에 애를 몇일만 두고 가면 고집을 확 꺽어서 고쳐주겠다고 했다.

늘 어른들은 내 아이에게 이런 당부를 하였다.

"엄마, 아빠 힘들게 하지마"
"엄마,아빠 말 잘들어"
" 고집피지말아야지"
"울지마"


평범하지 않은 내 아이의 모습과 가까이에서 자주 보게 되는 어른들의 말에 나는 위축이 되곤 했다.

나 또한 내 아이가 점점 말 잘듣는 아이가 아니라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로 커가고 있음에 힘에 부치기까지 했다.

이 것이 다 이도 저도 아닌 책육아, 배려깊은 사랑을 해서 그런가 싶어서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 것을, 애초에 알지 못했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 적도 많았다.

딸의 그러한 모습이 정말 내가 잘못키워서 그런 것은 아닌가하는 두려움에 휩쌓이기도 했다.

최근 유튜브 [작가 김새해의 사랑 한스푼]에 푸름이아버님께서 나오셔서 책육아의 모든 것을 다시 정리해주셨다.

푸름이아버님께서 엄마들이 책육아하면서 힘들어하는 이유에 설명해주는데 내 무릎을 탁!치게 만들었다.

푸름이아버님께서 말씀해주시는 이야기들이 내가 왜 그동안 육아가 힘들었는지를 소름돋게,명쾌하게 설명해주셨다.


엄마들이 책육아하면서 힘들어하는 이유  by 푸름이아버님


엄마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다보면(배려깊은 사랑) 그 아이는 이미 온전한 상태로 커서 빛이 강한 아이가 된다.

빛이 강한 아이는 자연스럽게 엄마를 비춘다.

아이가 비추주는 빛은 엄마의 내면의 상처를 건드리고 엄마가 누군인지 알게 해준다.

이 때 엄마들은 아이가 비춰진 빛을 대면하고 성장을 할 것인지, 아이의 강한 빛을 죽일 것인지를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

엄마가 아이를 이미 굴복할 수 없는 빛이 강한 아이로 키워놓고 커서는 그림자가 되라하니 아이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가 자기 자신의 내면을 대면하는 성장을 안하면 엄마 자신이 그림자이니 자기 아이를 그림자로 만들려하기에 아이와의 관계가 버거워지는 것이라 한다.

애초에 쉽게 굴복할 수 없는 빛이 강한 아이와 키워놓고 그 아이에게 그림자가 되라하는 것은 블가능한 일이라고 하신다.

애초에 책육아, 배려깊은 사랑을 하지 않아서 아이를 빛으로 키우지 않았다면 아이는 18개월 이전에 이미 굴복하여 말 잘듣는 아이로 큰다고 한다.

말 잘듣는 아이는 부모 입장에서 키우기 너무 수월하다고 한다.

다만 말 잘듣는 아이는 엄마의 내면을 비춰줄 빛이 없기에 내면의 상처를 건들 일도 만들지 않고, 엄마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도 주지 않는다 한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것은 자기 자식도 자기처럼 똑같이 키우는 내적불행을 대물림하게 된다고 한다.



내가 과연 이 말들을 내 아이가 까꿍이일 때 들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까?

온갖 아이의 지랄발광한 모습을 지켜보고 견뎌내고,함께 싸우고 울고 불고한 날들이 많았기에 나는 푸름이 아버님의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내 아이의 잊을만하면 하던 지랄발광 행동들은 빛이 그림자가 되지 못하는 불가능한 것에 대한 거부였고 발악이었다.

나는 어설프게라도 했던 책육아, 배려깊은 사랑으로 내 아이를 이미 빛이 강한 아이로 키워놓고, 수시로 그림자로 물들어가는 나의 모습으로 내 아이를 너도 엄마처럼 그림자가 되라고 다그쳤다.

몇년을 키워봐도 내 주변이 다들 그림자인데 왜 너만 빛을 내냐면서 그 빛을 가리려고 애썼고, 그 빛으로 엄마가 난감할 때도 많고, 그 빛이 엄마에게는 가혹하게 눈부시기에 너도 그냥 평범하게 그림자로 살라고 나는 아이에게 애원했던 것이다.

엄마인 내가 가보지 못한 빛의 세계에 내 아이는 가려하니 나는 두려웠나보다.

엄마인 나는 아직 그림자인데 내 아이는 나보다 밝은 빛을 내려하니 나는 내 아이에게 질투했나보다.

이 모든게 엄마인 내가 아이의 성장의 발톱의 때만큼도 따라가지 못한 결과였다.

결국 내 아이는 정답이었다. 내 아이는 이미 자신만의 빛을 내면서 잘 크고 있는데 엄마인 나의 불안과 두려움에 짙어진 구름들로 내 아이의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설프게라도 했던 책육아, 배려깊은 사랑이 가랑비 옷젖듯이 내 아이의 내면에 스며들어 내 아이만의 고유한 빛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바란 내 아이의 고유한 빛을 가까이 앞에 두고도 나는 미처 내 눈 앞에 있는 구름들을 걷어내지 못하고 눈뜬 장님과 다를바가 없었다.

내 아이의 빛을 있는 그대로의 빛으로 볼 수 있고, 엄마인 나도 아이가 비춰주는 빛에 따라 서서히 빛이 되어가는 과정이 결국 책육아였고, 배려깊은 사랑이었음을 내 아이 7살 언저리에 깨닫게 된다.

내 아이는 이미 자신만의 빛이 강한 아이로 키워놓았기에 엄마인 나는 아이가 비춰주는 흐름에 따라 나도 나의 빛을 내기 위해 따라갈 것이다.

내 아이가 비춰주는대로.

내 아이가 이끄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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