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라 앨리스 Dec 11. 2019

나를 다시 키우는 과정


결혼해서 1차적으로 내면의 바닥을 경험하고, 육아를 하면서 2차적으로 내면의 바닥을 경험하면서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이모양 이꼴로 살다 죽기에는 내가 너무 가여웠다.

이모양 이꼴로 사는 모습을 내 딸에게 보여주기에도 엄마로써 나는 너무 미안하고 비참했다.

가여운 나, 미안한 딸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모양 이꼴이 아닌 지금과는 다른 삶의 세계를 알고 싶고, 보고 싶었다.

내가 나의 삶을 실험해보고 싶었고, 내가 나에게 주는 삶의 기회였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현실은 당신이 과거에 했던 선택이고, 미래의 현실은 지금의 선택의 결과이다.



어느 책에선가 봤던 이 글귀로 나는 희망을 보았다.

현재의 나의 삶이 과거에 내가 했던 선택이라면, 내가 지금의 선택을 바꾼다면 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말이다.

현재 나의 30대에 다른 선택들이 쌓이면 나의 40대는 분명히 다르게 펼쳐지겠지?! 라는 희망을 품었다.

생각해보니 나의 30대는 나의 20대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나의 20대는 나에 대한 투자없이, 이런저런 탓만 하느라 허송세월을 보냈다.

30대의 현재 삶의 불만족스러운 원인은 타인에게 없었다. 모든게 나의 20대의 선택의 결과였다.

그동안 찍었던 나의 인생의 점의 방향을 틀어 다른 방향으로 인생의 점을 하나하나 찍으면 분명히 다른 방향으로 선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공간이 생겨나리라 믿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또다른 40대의 삶의 모습을 위해 더 늦기 전에 나의 30대의 선택을 달리해야 했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새로운 무언가를 해야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였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 노래만 부른다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없기에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그동안 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언가를 해야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그동안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그동안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려 했다.



위기를 기회로!!!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다시 돌아갈 직장이 없었다.


다른 직장인들처럼 육아휴직을 하다가 복직을 할 수 있는 기다리고 있는 직장이 없었다.


나는 그저 출산을 앞두고 퇴사를 하면서 그걸로 끝이었다.


더군다가 출산 직전 다니던 학원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지역과도 멀었기에 다시 돌아가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기존의 학원경력을 이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학원강사로 재취업을 하거나, 내가 학원을 차리거나, 과외를 하거나, 공부방을 하거나, 그냥 일을 놓는 것이었다.

나는 내 어린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의 좀더 나은 성적향상을 위해 내 어린 아이를 한없이 엄마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엄마이기에 다른 아이보다 지금 내 아이의 안전과 행복이 더 우선이었다.

그렇다보니 나는 나 스스로 그냥 일을 놓아버리고 내 아이를 키우는 것에 올인했다.

하지만 아이 키우는 일에만 올인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키우고 싶었다.

전업주부로써 독점육아의 스펙이 헛된 경력이 되지 않기 위해 다시 돌아갈 직장이 없다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나도 아이 못지 않게 내 손으로 잘 키워내고 싶었다.

You are what you read.​
당신이 읽은 것이 당신을 만든다.

나는 또 다른 삶의 40대를 위해 생전 읽지 않았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의 20대를 생각해보니 나는 책 1권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하기에 내가 30대에 책을 읽는다면 나의 40대는 달라질 것이라고 닥치고 믿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 모두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 나도 안 읽던 책을 잡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계발하고 싶었고,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싶었기에 주로 자기계발서 위주로 읽었다.

그렇게 읽은 책들이 읽을 당시에는 머리 속에 남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쉽게 휘발휘발 날라가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내 눈에 들어왔던 글자들은 내 뇌 어딘가에, 내 무의식 어딘가에, 내 세포 어딘가에 하나하나씩 축적되었다.

그렇게 읽었던 책들로 내가 말하고, 글을 쓸 때 나도 모르게 상기되어 활용되는 것을 체험한다.


You are what you see.​
당신이 본 것이 당신을 만든다.

20대 때 정말 주구장창 요일별로 TV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요일별로 몇시에는 어떤 방송을 하는지 다 꽤차고 있었으니까.

무슨 방송국 딸램도 아니면서 그리 다 알고 있었는지....

TV시청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있는 것이 아닌 그냥 틀어지는대로, 나오는대로 그렇게 주도권을 TV에게 넘겨주고 나는 수동적인 시청자의 입장이었다.

아이를 낳고도 한동안 아이 재우고 현실과는 다른 환상의 세계를 맛볼 로맨스드라마에 빠져 지낸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들을 본 시간들이 내 삶에 1%도 변화를 주기는 커녕 상대적 박탈감만 주었다.

내 삶의 공기와도 같던 TV시청을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결심을 하면서 끊었다.

지금은 무슨 방송이 핫한지, 어떤 걸그룹이 핫한지도 모른다.

BTS와 방탄소년단이 같은 아이돌임을 안지도 얼마 안되었다;; 이런 나를 보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라 바라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보는 것도 주도권이 나에게 있어야 한다.

나는 내 삶의 변화를 이끌고, 내 영혼을 충만하게 살찌우는 것들만 보려 한다.


You are what you think.​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당신을 만든다.

20대의 나는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과거에 상처받았던 것들로 현재 나의 삶이 되었노라 탓했고, 과거의 좋았던 일들이 현재에는 일어나지 않음을 탓했다.

과거에만 집중하며 살던 나의 20대는 현재의 삶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하기에 이제 나는 현재와, 미래만 생각하려 한다.

과거의 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과거의 일을 통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한다.

나의 통제 밖의 일들은 집착하지 않고 나의 통제영역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려 한다.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일들로 나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려 한다.

You are what you eat.​
당신이 먹은 것이 당신을 만든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보았던 먹거리 책들로 먹거리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았다.

20대에 나는 불규칙한 식사, 인스턴트 식품에 대한 무지로 나의 몸을 스스로 학대했다.

오늘 내 앞에 있는 내 아이는 어제 내가 먹인 음식들의 결과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먹는 것들로 세포하나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 또한 먹는 것에 신경을 썼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했던 일 중 하나로도 나의 입에 건강한 먹거리를 넣어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먹거리를 관리하면서 20여년동안 어떠한 약으로도 고칠 수 없었던 지긋지긋한 변비를 고치면서 숙변제거를 했고, 어떠한 다이어트식품이나 운동없이 1년 사이 10kg가까이 체중감량에 성공했다.


You are where you are.​
당신이 있는 곳이 당신을 만든다

20대의 나는 늘 나의 환경을 탓했다.

왜 내 주변사람들은 이러한지...왜 내 주변환경은 이러한지....내 현재의 삶이 나를 제외한 주변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 잘 만난 친구,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주변환경이 달라지기를 기다리기에는 내 이번 생이 끝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주변환경이 바뀌는 것을 기다리기보다 내가 바뀌기로 선택했다.

그렇게 내가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인 나를 바꾸면, 내 주변 환경도 바뀌리라 믿었다.

내가 바뀌려하니 신기하게도 기존의 관계가 아닌 내가 방향을 튼 세계의 사람들과의 새로운 인연이 생겨났다.

나는 새로운 관계에서 주고받는 에너지파동으로 전과는 다른 에너지를 받고 자극을 받는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 키우는 엄마에게 [자존감학대]는 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