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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목석 Apr 01. 2021

로또보다 당첨률 100%

온 우주의 힘이 모아지는 보물지도

350점 경희대학교. 370점 고려대학교.


고3 시절 다니던 해오름 독서실 내 자리 앞에 붙여져 있던 메모지. 당시 나는 내신 17등급 중 내가 몇 등급인 줄도 모르고 다녔다. 사실 그 등급은 외면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알고 싶지 않은 건 귀와 눈을 막아버리는 버릇이 있었던 것 같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때 평소 공부를 안 하던 애들도 밤새워 공부해 90점을 목표로 시험을 쳤더랬다. 하지만 나는 꿋꿋이  시험 전날에도 평소처럼 공부를 하기도 안 하기도 했다. 그래서 엄마가 시험날인 줄 모르시다가 평소보다 집에 일찍 하교하면 그때서야 물으셨던 것 같다.




그만큼 나는 달달 외우고 벼락치기 공부에 소질이 없었다.- 사실은 하기가 싫었다. 당연히 내신등급은 바닥이었을 거고 반등 수도 뒤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한두 달에 한 번씩 치는 모의고사는 내신보다 잘 나왔다. 시험은 평소 실력으로 보는 거야 하며 자만하던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그냥 나는 잘 될 거야, 라는 무의식이 강했던 것 같다. 내가 100점을 안 맞는 건 공부를 일부러 안 해 서고 내가 미친 듯 공부만 하면 1등도 할 수 있다 혼자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좀 막무가내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 1, 2학년 때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고 밤에는 공부한다는 핑계로 라디오를 들으며 새벽 1~2시까지 자지 않았다. 당연히 기본이 안된 나의 실력은 고3이 되어서도 모의고사를 보면 문과 250명 중 200등이 안되었던 것 같다. 잘하면 180등?! 아무튼 그런 내가 독서실 자리 앞에 경희대 350점, 고려대 370점을 적어놓았으니 그 당시 내 친구들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내 앞에서 비웃거나 조소하던 친구는 없던 걸 보면 착한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수능날도 생생히 기억난다. 평소 시험 볼 때 시험 자체보다 시험 문제를 아나운서처럼 속으로 읽으며 퀴즈왕에 나온 모범생 마냥 답을 답했다. 머리를 혼자서 끄덕거리며 원맨쇼를 했던 것이 생각난다. 누가 보면 너무 공부해서 머리가 이상해 진건가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수능시험 한 달 후 일이 터졌다. 수능성적표를 받아보니 400점 만점에 350점을 받았다. 아직도 생각난다. 공부 잘하고 얼굴 이쁜 애들만 사람 취급해주는 것 같다고 느꼈던 담임 선생님이 나의 점수를 보고 의아해하며 정시로 논술 준비를 하자고 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청개구리 여고생이었기에 절대 싫다고 말하고 수능 100%를 보는 대학교에 특차로 들어갔다. 그것도 제일 성적이 안 좋고 못하는 과목인 영어학과로 말이다. 아마 영어도 당시에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유창하게 외국인들과 서스름없이 이야기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19살 그때 수능 사건 이후로 나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은 쪽지에 적어 내가 자주 보는 곳에 적어 놓았다. 남들이 보면 허무맹랑하고 코웃음이 날만 한 것들이라도 말이다. 그렇게 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는 걸 알기에 창피함은 두 번째 문제였다. 오히려 무시하고 깔보던 사람들을 통쾌하게 이길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30살이 넘어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이제 나에게는 쪽지에 적을 만한 꿈이 없었다. 그냥 먹고살만한 지금에 감사하고 이것이 더 이상 깨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꿈은 어릴 때나 꾸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김재용 작가님의 힐링 글쓰기 수업인 "제주, 그녀들의 글수다"에서 보물지도를 만드는 시간이 있었다. 거의 20년 만에 만들어보는 나의 꿈 지도는 한 달 여가 걸렸다. 그동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꿈꾸는지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 지도를 다듬고 완성해가면서 뭔지 모를 희열이 있었다. 19살 여고생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며 진짜 다 이루어질 것 같았다. 작가님의 보물지도를 이룬 경험을 들을 때는 무섭기까지 했다. 보물지도에 뭔지 모를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엄마같은 친구같은 김재용 작가님


결국 작년에 만든 보물지도는 아직도 우리 집 냉장고에 부쳐져 있다. 19살 여고생의 독서실 책상이 아닌 마흔 살 워킹맘의 냉장고에 부쳐진 꿈들은 19살 여고생 때보다 더욱 농후하고 알차 졌다. 그중 내가 가장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는 "노벨문학상 수상"은 정말 말할 때마다, 아니 생각할 때마다 짜릿하다. 그것이 이루어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그 마음을 갖고 오늘 하루를 사는 내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온우주의 힘을 가지고 있는 보물지도.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서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며 끝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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