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병원에 다녀온다. 정식 명칭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정신이 건강해야 된다는 말처럼 이름도 참 정직하다. 정신과라고 하면 정신이상자가 다니는 부정적인 느낌이 들지만, 정신건강의학과로 하면 정신이 건강해지고 싶은 적극적인 사람들이 다니는 느낌이다.(정말 개인적인 느낌이구나)
지난달 진료에서 의사 선생님이 "나의 해방 일지"라는 드라마를 언급하셨다. 원래 드라마를 안 보는 나인지라 무슨 드라마인데 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무슨 일에서인지 다음날 넷플릭스로 1회부터 4회까지 정주행 했다. 밥도 안 하고 딸아이도 안 씻기고 데이베드에 누워 5시간 넘게 티브이만 봤다.
그리고 다음날 해방되었다. 사실 그전날까지 "단독자의 삶"을 지향 중이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인간관계에 질려버린 터라 사람들을 끊고 혼자 지내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해야 하는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고 난 이 또한 누군가의 필요와 목표에 따라 내가 정한 길이라는 것을 느꼈다.
난, 책을 좋아하고 서점가는 것을 행복해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돈이 안되고 내게 쓸모가 없는 일이라도 그런 내가 자랑스럽고 꽤 괜찮아 보인다.
해방 일지 속 드라마 캐릭터들은 저마다 아픔이 있고 해방되고 싶은 현실의 턱이 있다. 그중에 구 씨는 너무나 유명해졌다. 여자들이 딱 좋아할 스타일.
하지만 난 이민기가 연기한 염창희가 왠지 끌렸다. 아마 캐릭터에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라 그런 듯하다.
내 옆에도 계속 이야기를 해대는 직장동료가 있었고 그것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너무너무 성공하고 싶지만 현실은 가난한 기사 아버지와 문맹인인 엄마의 딸이었고, 뼛속까지 지방에서 상경한 20대의 찌질한 여대생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냥저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지 같고 한탄스러웠다. 그나마 창희처럼 이야기를 들어줄 착한 친구들이 있어 가끔씩 이런 내 맘을 토로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 같다.
마지막에 장례지도사 수업을 들으며 편안한 미소를 짓던 창희의 모습에 난 왜 눈물이 찔끔 났을까?
돈을 위해 성공을 위해 미래를 위해 전력 질주하다 맞닥뜨린 나의 운명을 만난 안도감일까?
나 또한 "책"에서 그것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은 내게 그런 존재다.
아무튼 "나의 해방 일지"는 참 좋은 드라마인 것 같다.
드라마를 추천해준 담당 의사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러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