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할매들이 나보고 뜨개질 천재라 한다

by 예나네

맞다, 어떤 분야에서든 천재 되기 쉬운 일 아닌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래, 나도 뜨개질 배우는 동안엔 뜨개질에 푹 빠져 있었다. 밥 먹고 밥 짓고 청소하고 잠자는 시간들을 대폭 줄여 뜨개질에 탰다. 개질에 푹 빠져있다 보면, 시간은 나를 초벽에 데려다 놓았고, 밥상엔 반찬이 허술했고, 화단에는 꽃들이 물을 굶은 채 있었다.


두어 달 정도 그렇게 했더니 이순의 몸이 신호를 보냈다. 팔과 어깨 그리고 허리가 쑤시고 아파왔다. 지만 스하고 부드럽고 알록달록한 나의 편물들이 탄생될 때마다, 내면 가득 햇빛처럼 쏟아지는 희열의 크기에 비하면 내 몸이 아픈 건 작은 거였다.


그래도 내 몸이 탈 나면 행여 내 자식들 걱정하고 고생할까 봐, 더 큰 화를 부를까 슬며시 염려될 나이 아닌가. 이순이면 아직 이르다지만, 일찍부터 조심하는 게 상수다.

그래, 제부터는 짬짬이 휴식을 취하면서, 즉 내 몸을 살살살 달래 가며 쉬엄쉬엄 개질을 하기로 다. 무리하지 않아야 남을 돕는 게 바로 자신을 돕는 것이 된다. 그래야 이 일이 오래갈 수 있다.





처음 나온 나의 편물이 어설펐는데도 할매들은 박수로 용기를 얹어주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점 코빠뜨림 같은 실수가 줄어들면서 솜씨가 여물어가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나의 시간과 내가 쏟아부은 열심이 서로 의기투합하여, 가로와 세로로 촘촘하게 짜이는 털실이 정교하게 하나의 소품으로 만들어지는 게 신기했고 재미까지 늘어났다.




어느 날부터 좀 더 멋진 이불 패턴이 없을까 하고 한국 유튜브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역시 한국사람들 똑 부러지게 쉽고 참신하게 잘 가르친다. 그중 차분하고 친절하게 가르치는 "아델 코바늘"의 영상을 구독하며 따라한 나의 결과물은, 어느 순간부터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호주 할매들 나의 꽃무늬 모양을 한 이불 편물 앞에서 베리 나이스, 를 연발하며 놀라워했다. 테리와 앤 할머니는 배워가기도 했다. 그뿐인가. 내가 뜬 비니 모자의 무늬도 너무 이쁘다며 칼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에 배우러 온다.

참신하면서도 정교하게 배색된 무늬가 그들의 눈에 확 들어온 것 같다. 예쁘고 사실적인 꽃 모양은 한국 뜨개질의 창의성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어났다. 그 덕에 내가 호주 할매들로부터 과분한 찬사를 받게 됐으니, 우리나라,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다!


할매들은 이렇게 말했다.

홍, 너는 뜨개질 천재야, 천재!


그러고 보니 한 땀 한 땀 뜨는 뜨개질은 많은 시간을 요하는 반면, 인기가 뜨는 건 한 순간이었음을 실감하겠다. 요즘은 내게 또 다른 "뜨개질 뉴 패턴 전문가"라는 별명까지 붙었으니.


내 뜨개질이 이렇게나 인기가 뜰 줄은
나 자신도 예전엔 미처 몰랐으니.



'아델 코바늘' 이라는 유투브를 보고 따라 뜬 무릎 이불, 모자, 숄. 이들은 홈리스와 병원 환우들에게 보내고 있다. 이 중 몇 가지는 나와 딸네 집 소파 위에 배치해 놓았다.


뜨개질 소품들을 보는 일과, 만지는 것과, 그리고 함께 모여서 뜨개질을 직접 하는 일은 언제나 마음을 부풀게 한다. 이번엔 어떤 소품이 탄생할까. 내가 만드는 나만의 첫 작품이 나오는 시간들은 늘, 나를 크레용 앞에 앉은 어린아이로 만들고 나를 설레게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할머니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 또한 나를 평화와 화합의 고요한 감성에 푹 젖어들게 한다. 사실, 40년이 넘도록 뜨개질을 해 온 그들의 겸허한 단수의 솜씨와 그들의 순수 앞에 서면, 나의 천재성? 은 한없이 작아진다.



그 와중에 나만의 독특한 색과 문양과 내 스타일 소품들이 늘어갈수록, 보람과 기쁨 그만큼 간다. 남을 돕는 일이, 내가 힐링되는 시간으로 바뀐다.


블렝킷 버디스 Blanket Buddies 라는 이름으로 2011 년부터 시작했다는 이 자선 교실의 모든 할머니들도 그 마음으로 뜨개질을 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알록달록한 털실로, 각자 자신만의 체취 손길로, 한결같이 따스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털실을 짜 분디의 시골 할머니들. 털실뭉치처럼 푹신하고 선한 웃음과 가식 없는 속거림 나는 참 좋다. 털실뭉치처럼 둥글, 이불처럼 서로 덮고 의지하며 운영되는 교실의 분위기에 시나브로 젖어들고 있다. 나도 조금 조금씩 닮아간다. 이들을.


이름 없던 털실이 누군가의 이불이 되듯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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