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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Aug 20. 2022

이곳 뜰엔 봄빛 스며들고,그곳 뜰엔 가을빛 쏟아지겠지요



몇 해전에 달랑 한 포기로 시작했던 뜰안의 깨가 시나브로 일가를 이루더니, 마을을 이루고, 이젠 하나의 나라가 됐어요. 리나라 좋은 나라, 대 한 민 국이요.

 지난가을에 받아 둔 씨앗을 내가 애지중지 갈무리하고 있으니 나의 생명이 지속되고 있는 한, 이놈들도 멸족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씨앗들이 흙을 뚫고 올라오더니 완연해진 봄빛을 받아 하루가 다르게 떡잎이 자라고 있어요.

근데 이놈들도 향수에 젖었을까요. 이른 아침부터 눈물 한 방울씩 영롱히 달았어요. 

놈들 한 번 봐주실래요?


어떠신지요?
    대견하고 이쁘다고요?

나의 고향친구 들깨들이랍니다. ^^ 새벽이슬에 아직 눈가가 촉촉하네요.




 재작년인가요? 윤여정 주연 《미나리》를 보고 미나리를 길러보고 싶었답니다. 평택 과수원에 살 때 논두렁 사이 축축한 곳이면 어디든 지천으로 널려있던 미나리가 여기 호주 시골, 번다버그에서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본들 소용없었어요. 찾는 데 헛발질만 하있었지요. 고놈들이 그리워 애만 태우고 있었던 거지요.


산도 없는 대평야가 지평선을 그리는 곳, 이곳에는 사탕수수 밭이랑 해바라기 밭이랑 토마토 밭, 주키니 호박밭, 그리고 고구마 밭들 주인공지요.


여기 인터넷 식물 관련 사이트를 뒤져서 미나리 씨앗인 줄 알고 시킨 게 글쎄, 베트남 고수 나물이었지 뭐예요. 아쉽게도 우리 가족 그 향은 좋아하지 않요.





바라고 바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현빈이 손예진한테 《사랑의 불시착》에서 말해줬나요?

그래요, 드디어 우리도 만났어요. 이곳  이쁜 한국인 가족이 미나리 모종을 플라스틱에 담긴 걸 째로 주었지 뭡니까. 지금은 분양을 해서 3개의 밭? 에서 가지런히, 파랗게 자라고 있지요.


그날 나는 너무 고마워서 소고기, 고사리, 그리고 온갖 좋은 양념 담뿍담뿍 썰어 넣어 육개장을 뽀글뽀글 끌여서 냄비째, 이쁜 가족에게 들이밀고 왔어요.  이키 많이 주냐 하더니 맛있어서 그날 다 먹었다고 전화가 왔어요. 인사치레는 아닌 것 같았어요. ^^

아참, 미나리 보여드린다는 게, 늑장을 부렸네요.

  

타국, 것도 내 뜰에서 맡는
봄 미나리 향은
더 상큼하게 다가오네요.
맞아요, 향수.
 그리움 물씬 풍기는 그런,
향기겠지요.


향수 물씬 풍기는 미나리고요.




봄나물엔 상추와 봄동 배추가 빠지면 안 되지요. 여기에도 다행히 이들의 모종이 있어서 호주 대표 화원, 버닝스Bunnings에 가서 사다 다담 다담 심었답니다.

매일 물을 뿌려주고 어제는 비료를 줬답니다.



봄빛과 봄바람에 한들거리며
파랗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배추와 상추 모종은 호주 버닝스에서 사왔어요.
버닝스 웨어하우스 Bunnings Warehouse 건물 외관




딸기농사는 여기 와서 여섯 번 시도했다가 매년 망쳤었어요. 자꾸 줄기에 곰팡이가 피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여기, 번다버그에도 딸기 심는 계절이 있더군요. 겨울이 시작되는 6월에 심어야 한다고 옆집 칼리 할머니가 알려줬어요.


6월에 칼리랑 둘이 화원에 가서 딸기를 사다 심었는데, 우리 딸기가 작황이 너무 잘 되었어요. 매주 수요일마다 우리 집 딸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칼리는 우는 시늉을 해요. 자기네 딸기가 잘 안 자란다며요. 오지랖 넓은 내가 또 가 봐야지요. 일주일 전에 그 댁 딸기한테 가서 햇빛 고운 쪽으로 옮겨주고 비료를 살짝 뿌려주고 왔어요.


우리 집 첫째예요. 맏딸기가 빨갛게 아침해처럼 물들었어요.
놀러 오세요. 추수할 때요.
조금이나마 나눠드릴게요. ^^

딸기모종도 이곳 버닝스에서 샀답니다.




아래 사진 중 위에 키 큰 아이들은 4살 된 고추나무랍니다. 파란 고추가 엄청 많이 열리는요. 여긴 겨울 온도가 영하로 안 떨어지니 고추가 한국과는 달리,  다년생 식물이랍니다.


고추 아래는 생강이에요. 일전에 이웃집 아저씨, 온갖 식물을 기가 막히게 잘 기르는 믹이 키운 생강 세 덩이를 주면서 감자 눈처럼 도려서 심으면 싹이 나온다기에 그대로 해봤어요.  생강차는 위장에 좋다는군요.



요놈들 보면 볼수록 귀하고 신기해요.
씨앗을 받아 4년 전 심은 고추나무가 내 키보다 크게 자랐네요. 요즘은 자꾸 담을 넘어가려해서, 내 손길을 뻗어서 안으로 다독거려 주고 있습니다.


생강 눈을 두 쪽 쪼개서 심었는데 요놈들이 돋아 났어요. 그러니 생강이 맞겠죠? 저도 처음 만나서 아리송하네요. ^^


가을에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그런데 문득,
고국의 가을빛 내려앉을 단풍잎이
보고 싶네요. ^^

뜰안의 친구녀석들입니다. 요놈들도 봄맞이 준비를 슬슬 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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