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집 중, 세 집은 부르기 않기로 했다.
그건, 다 자란 어른들의 모임으로서, 자랑거리는 되지 못한다.
2022 끝 날, 두시 반즈음에 딸랑딸랑 우리 집 현관의 종이 울렸다. 빈여사가 속삭이듯 송년파티를 알려왔다. 다섯 시 반, 자기 집 게라지로 오란다.
이웃의 12집 중 9집만 간택되었다. 몇 집이 머리를 맡대어 고심하여 한 결정이다. 한 집은 세대주가 지나치게 거만하고, 또 한집 여인은 회의 때마다 반대를 위한 생트집을 잡고, 마지막 집은 여인의 성질머리가 사나워서 화가 나면 윗사람한테 소리를 지른 내력이 있다 보니 아쉽지만 간택에서 빠졌다. 살다 보니 서로서로 상처받은 내력을 갖고 있다.
속내에 내재되어있어서 평소에는 잘 모르나, 가끔 내어놓는 안 좋은 성질을, 이웃사람들은 용케도 캐치를 하고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한집은 교수, 한집은 엔지니어 와이프, 한집은 회계사 출신 여인이다. 사실은, 사람인지라, 모든 사람을 이론처럼 다 사랑하고 다 끌어안을 수 없는 현실 속에 우리는 있었다.
빈여사는 파티에 올 때 핑거푸드 한 접시와 나만의 드링크를 갖고 오라 했다. 이처럼 여기는 파티에 갈 때 꼭 한 접시씩 음식을 해가는 게 국민룰이다. 드링크는 각자 자기의 선호하는 음료가 다르니 자기 것을 들고 간다.
며칠 전에도 우리 집에 와 티타임을 하고 간 빈여사, 나랑도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 우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선한 이웃이 되었다.
그녀는 나보고 들고 올 음식이 뭐가 있을까 상의하듯 물었다. 내가 잠시 머리를 굴려서, 난 수박하고 한국찹쌀떡을 들고 가겠다하자, 쿨녀 빈 여사, 반색하며 손뼉까지 친다. 자기는 수박을 좋아한다고.
나는 수박과 체리를 아담하게 썰어 담고 찹쌀떡은 봉지째 갖고 가서 접시에다 옮겨 담았다.
제인은 한국제 찹쌀떡이 맛있다 했고, 빈은 떡이 입에 들러붙는다며 상을 익살스럽게 찡그리며 먹었고, 칼리는 마시멜로처럼 달다고 말했으며, 릭은 최고라고 양쪽 엄지를 세워 보였다. 모두 다 가식 없는 진심을 알려줘서 좋았다.
빈 여사, 나의 수박이 정말 맛있다며
몇 개를 연거푸 가져다 먹는다.
5시 반에 모이는 송년파티를 2시 반에 불현듯 통보했음에도, 시간이 되니 초대된 이웃사람들이 거의 다 모였다.
마지막으로 10호 여인과 12호 할머니가 오는 걸 보자 쿨한 주인장 빈여사, 입구에 가서 웨이터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주인장 빈 여사는 또, 오늘은 좋은 사람들만 다 모였다며, 올드 팝송이 흐르는 리듬에 맞춰 흥얼거리고 손뼉을 치고 엉덩이를 흔들어 즐거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녀가 단정한 좋은 사람은 꽤 주관적이다. 그렇다고 간택되지 못한 집이 나쁜 사람만은 아니다. 마음이 안 맞아 함께 있으면 불편한 사람들이기는 하다.
이웃 간의 파티에 처음 와보니 재미있고 신기하여 파티장의 사진을 찍었다. 친절하고 다정하고 소박한 이웃들이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해주었다.
얼마 전 약혼반지를 받았다는 이쁜 젊은 엄마도 참석했다. 내년 삼월이면 두 살이 되는 서양 인형같이 생긴 딸내미, 멜로디를 안고 왔는데, 빈여사가 덩실덩실 엉덩이를 흔들자 인형도 생글생글 똑같이 춤을 흉내 낸다.
파티장의 관심과 박수를 한 몸에 흡수한 걸 보면, 역시 젊음은 자체로 아름다운 시기다. 인형 같은 아가에게 흠뻑 빠져서 난, 사진 찍는 일도 까맣게 까먹고 있었다.
이웃들은 자기가 마실 와인이나 비어와 무알콜을 쿨백에 넣어와서 부담 없이 꺼내 마시면서 끝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지난 9월에는 중장기를 불러서 우리 타운 하우스 안의 큰 나무를 전부 캐냈었다. 그러고도 땅밑에 남아있던 굵고 억센 나무뿌리를 거의 일주일 동안 뙤약볕 아래서 묵묵히 땀 흘려가며, 말끔히 처리해 주었던 부부는 입담도 훌륭하다. 좌중을 이끄는 믹과 트레이시 부부가 웃겨서 중간에 배를 잡고 깔깔대고 웃는 장면도 연출했다.
중간에 잠시 참석한 1호 집 여인은 며칠 전 세대주가 심장마비가 와서 병원에 갔다 왔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엔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다가 다시 업되는 본연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작년부터 1호 집 둘째 아들은 한국에서 군생활을 하는데 내가 그의 안부를 묻자, 아주 해피하게 대전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내 옆에 앉은 트레이시는 우리 집의 이전 주인도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다며 귀띔을 했으니, 이 호주시골 우리 이웃 사이에서도 나의 고국 대한민국은 유명세를 떨치는 중이다.
빈여사, 베이비 시터 같은, 하우스 시터로 은퇴한 자기 남편이 케언즈에 가있는 요즘 한 달간 자유부인이 되었다며 좋아 어쩔 줄 모른다. 얼굴까지 춤출기세다.
올 2월에는 캐나다에서 딸네 4인 가족까지 다 오고, 4월에는 자기가 친정동네인 뉴질랜드에 간다니, 2023은 바로 자신의 해란다. 캐나다에서 오는 4인 가족은 비행기 값만도 일만사천불이라니, 교통비만도 어마무시하다.
자랑하랴, 흥얼흥얼 노래하랴, 호스트 하랴 혼자 젤로 바쁘다. 34년간을 간호사로 일했다는 그녀가 우리 이웃 중 씩씩하기로도 둘째가라면 섧다. 달포 전에는 릭 할아버지와 같이 비 오는 날을 택하여 공용 우든 펜스를 새것같이 말끔히 씻어놓았으니.
이렇게 안팎으로 기꺼이 몸 던지는 이웃이 있어, 우리 타운 하우스가 상쾌 명쾌하게 잘 굴러가고 있다. 그들에게 특히 감사한
날이다.
시원한 바람이 친구 하자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파티장은 혼자 살빛 다른 내게도 신선하고 즐겁고 편안했다. 중간중간 그들이 웃을 때, 내용을 전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마음이 푸근하고 편안했다.
그들이 구워온, 오븐에서 갓 나온 치킨, 미트볼, 소시지롤도 따끈하니 더 맛있었다. 난 한 종류에 하나씩 빠짐없이 다 맛을 봤다. 좋은 사람을 닮아서 음식도 다 좋은 맛이 났다. 빠진 데 없이 구수하게 맛있었다.
12호 할머니가 가득 쏟아 들고 오신 초콜릿 바구니 앞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종류를 고르느라 정보를 나누는 모습도, 낯선 듯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초저녁 잠이 많은 나는 9시 즈음에 주인장 빈 여사와 찐한 포옹을 하고, 이웃들에게 해피 뉴이어를 외치고서 집으로 건너왔다.
작년 2022년에는 내게도 여기 호주시골에서의 송년파티가 꽤 있었다. 재작년 2021에는 시드니 딸네 집에서 가 있기도 했었지만, 여기 있었더라도 코로나로 인하여 파티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다.
말도 어중 뜨고 깜장머리인 내가 가까운 이웃에게 좋은 이웃으로 간택된 파티가 그래도, 새해 아침을 더 가뿐하고 기쁘게 만들어 주었다. 한편으론 다 같이 화합하는 올해가 되면 좋겠다. 올 2023도 좋은 이웃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쿨한 빈여사, 딸랑딸랑 우리 현관 종을 울릴 수 있도록, 올해도 이웃과 친함을 유지하고 영어 실력도 좀 더 끌어올려야겠다.
브런치의 모든 좋은 이웃님들,
2023, 계유년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