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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에서 마주친 나팔꽃과 캥거루의 팡파르

- 배부른 게임 6

by 예나네

2023. 2. 27. 월.

딸의 휴무 3일째.



새벽 6시. 카페에서 아침을 때우고 산책을 하기로 한다. 단골카페, 리버 크루즈는 6시에 오픈한다. 카페 가기 전의 체중계 숫자는 59.75로 어제보단 내렸으니 다행이다. 계절이 한국과 반대인 여긴 밤이 길어져서인지 카페가 아직은 한산하다. 우린 강풍경을 좀 더 가까이서 정면으로 볼 수 있도록 앉았다. 딸은 오늘도 한결같이 킨랩을 플랫 화이트랑 오더 하고, 난 이번엔 이 좀 더 적은 미니 베니를 라테랑 같이 시켰다. 근데 딸도, 나도, 평소보다 더 깨끗하게 접시를 싹싹 비우고 나왔다. 우리 모녀 뱃속에 못 먹고 죽은 구신이 들었는가, 난 이렇게 생각하며 아으나, 우리 다이어트하는 사람 맞아? 하고 물었다. 속물인간처럼 배만 채우긴 너무 아쉬웠을까. 강의 새벽풍경도 가슴에 포시 들였다. 여름을 지나는 이른 가을강의 새벽 정취는 명경처럼 맑아서, 강물도 제 가슴 찰랑찰랑 일도록, 황홀하게 경들을 품고 있었다.



산책은 길게 잡았다.

명색이 다이어트 중이니까. 먼저 3Kg를 빼는 사람이 150불을 취득하는 일명 배부른 게임니까. 딸이 바가라해변에다 차를 세우고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숲 속을 걷는 부쉬워킹을 선택했다. 뱃살이 빠지라고 나는 두 팔을 최대한 가위표로 씩씩하게 흔들다가, 백인들이 가까이 오면 얌전히 팔을 내려서 굿모닝, 하며 인사를 교환했다. 또, 한국여인들 특유의 대놓고 팔의 반경을 너무 드넓게 흔들면 딸이 살짝, 눈치를 준 이유도 있다. 나뭇잎과 풀잎에 수분 금조금 빠나가는 숲 속 가을바람소리는, 청청한 여름의 무게보다 가련하게 사그락거린다. 람의 발걸음도 가을잎들만큼 가볍게 디뎌 산길로 든다. 찌는 듯 덥던 여름이 제 몫을 가을한테 맡겨놓고 사라져 버렸으니, 용케 알고 사람들이 가을을 맞으러 바깥으로 나왔다. 합주와 운동을 즐기는 팀이 여럿 보인다. 시원하게 드리운 가을그늘 덕에 나도 숲길 6.6Km, 12,842걸음을 찍었다. 3월 1일부터 가을로 규정한 이나라 계절은 과학이다. 어김없이 때를 맞추는.



오늘은 수분기를 뺀 가을잎처럼, 나의 음식조절도 잘 되었다. 어제의 6.10을 만회하고 59.55까지 돌아왔다. 숲길에서 마주친 나팔꽃과 캥거루의 팡파르는, 내 가슴으로 들이도록 고요히 울린다. 뭇 꽃들과 숲 사이 파란 하늘이 박수를 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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