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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5g 살의 무게가 깊다

- 배부른 게임 9

by 예나네

2023. 3. 5. 일.


눈금저울이 절실했다.


눈금이 세밀화처럼 그려진 날로 울이 있었다면 숫자 57.99에 도달하는 데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좀 더 빨리, 뾰족한 저울침으로 잔눈금을 정치하게 가리켜주었을 거다. 디지털 저울이 5g 단위로 끊어 보여주는 건 예상밖이었다. 이 저울을 하루 백번도 더 오르내렸음에도 난 인지하지 못했다. 5g을 모아서 숫자를 내리는 시간은 내게 지독히도 지루했다. 단 5g의 살의 무게는 깊었다.


에드거 엘렌 포우 "도둑맞은 편지"에서 곡진하게 치밀한, 두 달간의 경찰수사로도 못 찾아냈던 왕비의 편지가, 훔쳐간 관의 편지꽂이에 젓이 혀있었다더니. 아무렇게나 둔, 너무나 알기 쉬운 진실을, 사설탐정 뒤팽만이 간파했다더니. 이때껏 5g의 단위로 내 살의 무게를 재고 있을 줄 난 인식하지 못했다. 나의 지대한, 아니 우매한 관심은 직 57.99Kg에만 혀 있었기 때문이다.


빼는 건 어렵다.

새벽 3시 즈음에 58.35로 시작했다. 58.15으로 내려가는 데는 자전거를 타서 어렵지 않게 뺐다. 임정적이자 150불 물주, 이 집을 나서는 6시 40분 전까지 숫자 57.99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58.15는 체중계와 사돈을 맺었는지 꿈쩍을 안 했다. 딸이 옷을 다 벗고 재 보라 했다. 난 과감하게 치마를 벗었다. 숫자, 미동도 없다. 스마트 시계를 끌렀다. 그래도 숫자는 고집 센 당나귀인 양 그대로다. 딸이 집을 나갈 때까지 웬수단지 같은 그 58.15 중 단 5g도 치우지 못하고 말았다.


딸이 나간 후 샤워를 해보았다. 찌뿌둥한 마음이 씻겨나가 한결 홀가분해지면 5g이라도 줄어들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엔 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빈번하게 발생하는가. 더구나 과학도 변하는 세상. 아침이라 선선한데도 용기를 내어 찬물로 몸을 헹구었다. 더 상쾌한 기분이면, 최소 5g은 떨쳐 낼 것 같았다. 오 마이 갓! 나의 노력은 5g의 숫자를 덧붙이는 꼴이 되었다니. 머리가 안 좋으면 몸이 고생이라더니, 숫자가 58.20으로 올랐다. 5g이고 뭐고 포기하고, 커피나 내려 향기로운 향을 마시기로 했다.


깊이는 그대로 둔다.


그럼에도 어제, 오늘 노력한 게 아쉽고 아깝고 안타까웠다. 마지막으로 숫자를 재보자, 하고 거의 100번째 체중계에 올라가 보았다. 오 마이 굳니스! 58.00으로 확 줄어있었다. 왕비의 "도둑맞은 편지"를 찾아내기 위하여 장장 두 달 동안 수사를 벌여도 못 찾던 편지, 책꽂이에 그냥 던져놓듯 꽂혀있던 그 편지, 오늘 아침 내 앞에 나타난 58은 그런 어이없으나 반가운 자였다.


커피물을 싱크대로 얼른 흘려버리고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탔다. 어제 2시 39분 이후부터 지금까지 소량의 물만 마신 터라 힘이 바로 쑥 빠졌다. 배가 너무 고파서일까. 꼬르륵대지도 않는다. 혹시 이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겁이 덜컥. 10분도 안되어 자전거에서 탈출. 체중계에 올라간다. 숫자를 확인한다. 57.95. 난 혼자 피식 웃었다. 똑같은 체중계에 감쪽같이 숨어있던 숫자 57.95가 뭐라고. 나를 이른 아침부터 그토록 들었다 놨다 했는지. 참내. 오늘 아침 5g의 살의 무게, 깊었다.


* 어제오후 3시 41분 : 58.70kg

* 오늘오전 7시 19분: 58.00kg

* 오늘오전 7시 33분 :57.95kg




흰 죽 두 공기 후루룩 먹었다.



딸이 방금 퇴근하면서 상금을 빼왔다.

축하축하 한단다. 이쁘다. 고맙다.





브런치작가님들 덕분에 2월 19일부터 '배부른 게임'으로 시작된 저의 다이어트가 오늘, 3Kg 빠지는 목표달성을 완수했습니다. 응원해 주신 작가님 한 분 한 분께 무한 감사드립니다. 따듯한 격려의 말씀과 좋은 팁을 제공해 주셔서 진심 고마웠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먹는 타성을 깨고 몸에 좋은 음식을 적절히 섭취하여 건강관리 잘하여야겠습니다. 작가님들께서도 언제나 건강하시길 빕니다. 땡큐, 에브리원!! ^^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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