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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그 당돌한 계획

- 배부른 게임 8

by 예나네

2023. 3. 4. 토.

숫자가 목표에 거의 도달해서 좀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요 며칠 동안 나의 체중계 숫자가 1kg을 못 빼고 있었다. 갑갑한 주가 비유하면 될까. 숫자는 58. 90 주변만 아기보폭으로 맴돌았다. 57.99가 되려면 0.91만 빼면 되는데 그 1도 안 되는 숫자의 고지는 서로 닿을 듯 닿지 않은 아슬아슬한 그림 속 손 같았다.


저녁 끼니로 고구마를 달게 때우고, 자전거 타기 30분으로 땀을 내고, 이튿날 아침 숫자를 체크해 봐도 숫자는 미동만 있을 뿐이었다. 엄마, 다이어트도 계단식으로 숫자가 줄어드나 봐. 자기 다이어트의 절반은 포기한 듯한 딸은 게임의 정적? 인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세상 이치가 다 그랬다. 영어공부도 글쓰기도 그랬다. 처음에는 실력이 쑥쑥 자라나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부터 실력이 붙지 않아 포기하고 싶은 맘이 간절해지는 지점, 그곳에 나의 다이어트게임이 닿아 있다.


다이어트를 하다 보면 식탁에 차려진 상이 낯선 날도 있다. 격조하게 만난 친한 벗 같은 느낌. 식사 양을 대폭 줄이거나 건너뛰다 보니 어떤 땐 상이 낯설어졌다. 내가 이렇게 먹었던가. 냉장고에 남은 음식이 쌓이는 것도 낯설다.


그럼에도 먹고 싶은 마음을 제하는 일은 매력이다. 으로도 때리지 말라, 는 짧은 시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랄까. 마치 먹는 걸 하이에나처럼 밝히던 동물에서, 절제된 시를 짓는 상한 시인이 된 기분. 러니 여러분도 나도 다이어트를 행하는가.


단 3Kg의 숫자를 뺄 목적으로 다이어트 하나 하는데 이렇게 서론이 거창해졌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던데.





딸이 어제부터 속이 안 좋다고 하여 흰 죽을 끓였다. 따끈하고 쌀이 부드럽게 잘 퍼져 걸쭉해진 흰 죽은 속이 시원하고 편했다. 오늘아침 그 흰 죽을 먹기 전에는 58.30이었다. 얼마나 바라던 숫자던가.


그러나 흰 죽 한 그릇과 김치 몇 조각 부침개 한 조각을 참지 못하고 위장으로 미련스럽게 밀어 넣은 후 숫자는 다시 58.65로 올라가 버렸다. 과연 내일까지 57.99로 내릴 수 있을까. 성질머리가 급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고, 마음이 기계화가 되어간다. 숫자를 줄일 단단한 계획수립에 혈안이 되어있다. 지금.


오늘 오전 7.19분 ; 58.30.

식사 후 오전 9.52분에 58.65.

야채, 밥, 부침개 6조각(고소한 맛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2시 39분 점심식사 후 화단에 물 주고 나서 3시 41분 58.70.


오늘 저녁은 딱 커피 한 잔으로 때울 거다. 내일까지 57.99로 만들 거다. 보통 하루 수치가 아침보다 점점 올라가는 걸 보면 다이어트는 오후에서 아침까지, 긴 공복이 중요하다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운동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오늘 밤 운동 목표 ; 자전거 30분, 저녁에 뜰 걷기 6000보 반드시 실행. 나무 밑에 누워서 입만 아, 벌리고 감이 떨어지길 바라면 안 된다. 목표에 도달하려면 이 당돌한 계획을 실천해야 한다.


과연 내일 아침엔 57.99 가 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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