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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Mar 09. 2023

담 너머 할아버지


빌 할아버지네는 2년 전에 이사를 왔다.




서양인답지 않게 키가 자그마하다. 용하고 인자한 인상이다. 어느 날 딸의 숍에 와서, 네가 홍의 딸이냐고 물을 때, 옆자리에 같이 있는 걸 보았다는 아내 되는 앤은 그보다 더 작더란다.  앤은 목소리만난 적이 있다. 그들의 밭과 나의 집 사이엔 양철담장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도 할아버지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서 앤을 목소리로 소개해주었다. 새집을 지어 이사를 오면서 빌 할아버지는 우리 집 앞에 아담한 창고를 하나 세웠다. 양철담장보다 팔하나길이만큼 더 높고 너비는 내 키의 1.5배 정도 된다.


우리 이웃사람들은, 노는 땅도 많으면서 왜 이렇게 남의 집 앞으로 바짝 붙여 건물을 지었냐며 더러 할아버지 흉을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반대였다. 이 낮고 깜찍한 창고는 우리 집의 또 다른 소품처럼 느껴졌다. 우리 집을 바라보는 창문 같은 것도 달지 않은 창고가, 오히려 우리 집 분위기를 더 아담하게 꾸며주었다. 난 창고 앞에다 벤치와 탁자를 배치하여 해 질 녘이나 이른 아침 티 타임을 즐긴다. 베란다에서만 보던 풍경도 달리 보이고, 시간에 따라 시원한 바람도 또 다른 느낌으로 살갗에 닿는다. 나는 그럴 때마다 행복 두 배, 평화 세배의 감응을 느낀다. 창고가 들어서고부터 우리 집 베란다도 한층 더 시원해졌다.


  할아버지네 창고벽 앞 벤치에서 이 글을 쓴다. 하늘의 소품인 흰구름과 푸른 하늘의 광장을 말끔히 쓸고 씻어놓은 듯  하 맑다. 허공 중 어디선가 산발적으로, 그래서 자유로운 새들의 지저귐이 청아하다. 어느 한 집에 잔디 깎는 소리 낸다. 소리들은 찍을 수 없으나 바람이 살랑, 이는 모습은 찍힐까, 하고 쓰던 글을 저장하고 벤치에 앉은 채 폰을 들어 올려 몇 개의 컷을 찍었다. 내 살갗으로 산산한 바람이 지속적으로 닿는다. 시원하고 상쾌한 감각으로 다시 브런치를 연다. 나도 좀 바지런한 축에 는 사람인데, 담너머 할아버지는 더 부지런하다. 가끔 담너머로 넘겨주는 파, 감자, 파슬리, 호박 같은 농작물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도 난 할아버지의 성실 근면함을 눈으로 많이 봐왔다.


어제 할아버지는 창고옆구리, 그러니까 우리 집 부엌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다 이상한 파이프를 매달아 놓고 계셨다. 지하에 묻는 배수구 느낌의 굵은 그것은 보기가 안 좋았다. 더구나 부엌 앞이라니. 우리 집 미관을 해쳤다. 애가 좀 탔다. 담너머에 계셔서 할아버지를 만날 수는 없었다. 인기척으로 보아 커다란 드럼을 물로 헹구고 계신 듯했다. 나는 하이 써, 하고 할아버지를 불러보았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초승달 같은 눈웃음으로 방그레 웃는 할아버지한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햇이 더운 데서 뭘 그렇게 하시냐고만 여쭤봤다.


 8 순의 할아버지는 창고지붕에서 흘러내릴 빗물을 받아낼 수통을 만들고 계셨다. 그걸로 담장 밑 밭에 물을 줄 거라 하셨다. 난 빛이 너무 뜨겁다며, 이른 아침에 시끄러워도 우린 괜찮으니, 좀 더 시원할 때 일을 하시라고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맞다고, 고맙다고 하시면서 또 백만 불짜리 눈웃음으로 답하신다. 그러더니 이런다. 이 파이프는 우선 대충 설치한 것이고 밑으로 20센티미터 내려서 달 것이라고. 할아버진 이미 우리 집의 미관까지 염두에 두고 일을 시작하신 거다. 난 괜찮다고 했더니, 아니 그럴 거라시며 결연한 마음의 못을 쾅, 박으셨다. 할아버지가 사다리를 내려가시고 휴, 난 가만히 가슴을 쓸어야 했다. 마치 불평하는 것 같은 리석은 느낌적인 말씀, 안 드리길 잘했다.


앞으로 담너머 할아버지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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