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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Mar 31. 2023

깊이의 극치


이웃집 할머니의 꽃을 떴다.



16년 전 해외로 나오면서, 철학서적만을 따로 싸 보냈던 한국산 보자기를 서랍장에서 꺼냈다. 순결한 흰색과 화사한 분홍 사이에서 잠시 고민해 보았다. 역시 유쾌한 칼리할머니한테 어울리는 색은 화사함이 우월하다. 28송이 꽃이 핀 작은 꽃이불을 세 겹으로 수줍은 듯 고이 접었다. 분홍 보자기로 감싸 안아 리본모양으로 매듭을 지었다. 


사실꽃이불을 전에, 보낼 편물을 내 침실에 펴놓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몸이 아픈 팔순 할머니의 이불이라, 이번에는 더 깊은 정성을 들다. 코의 사이즈가 안 맞으면 풀어서 다시 일정하게 뜨고, 보푸라기가 있으면 실을 끓어 다시 정결히 이어 떴다. 


그래도 그렇지. 왜, 내 안에선 망설이는 바람이 스쳐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새색시 시집보낼 때 잡은 손을 놓치는 기분이랄까. 공들여 한 땀 한 땀 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이뻤다. 음 저변에서, 기 아깝다는 잔잔히 다. 나의 침실에 그대로 앉혀두고 싶었다.




할머니가 들어오시던 문을 따고 나갔다. 그녀 집으로 건너가서 벨을 눌렀다. 벨이 고장 나 있었다. 돌아갈까, 하다가  하이 칼리, 아이고, 너네 벨 고장 났어. 소리가 안 나네. 내가 그녀네 뜨락 서서 그러자 칼리는 부엌에서, 릭은 서재에서 쿵덕쿵덕 리듬을 타듯 걸어 . 


세상 환하게 웃으시며 나를 반긴다. 두 분 다 외출복 차림이었다. 점심을 외식하 2주마다 가는 할머니 치료차 병원에 다녀오셨단다. 할머니는 흰 붕대가 감긴 팔을 보여주신다. 상을 살짝, 소녀처럼 찡그리다 바로 웃음으로 편다. 유쾌한 칼리답게, 목소리 쟁쟁하고 기력 생생하다. 




 싼 분홍 보자기를 내밀자 할머니가 얼른 받아서 자기 품에 꼬옥 안는다. 바로 할아버지에게 자랑을 한다. 할아버지가 허리를 굽혀 꽃이불얼굴을 고 뽀뽀를 하자 건드리지 말라고, 할머니 노, 노, 하며 할아버지에게 소리친다. 금방 암치료받고 온 팔순 할머니라 하면 아무도 안 믿을 듯싶다.


나는 28송이 꽃은 당신들 두 분을 위해 만들었다고 할아버지 편을 드는 체한다. 그러자 할머니는 또, 노, 노, 하신다. 그리고 얼른 자기 품에 져다가 더 세게 안는다. 그러고 이런다. 유아 어 노티 걸!이라고 소리를 꽥, 지르듯 외친다. 불현듯 이웃집에서 웅성웅성하는 걸 보니, 어디서 싸움 났나 싶어 놀란 듯하다. 


너는 장난꾸러기 소녀야!!라고 내 뒤에서 또 한 번 소리치는 할머니 소녀와 할아버지 소년에게 활짝 인사를 하고 나의 집으로 건너왔다. 마음이 뿌듯하고 깊어졌다. 고맙다는 백 마디 말보다 유머러스한 패러독스, 너는 장난꾸러기 소녀,라는 말로 대신 한 칼리할머니가 소녀처럼 겨졌다.



할머니의 인사는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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