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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Mar 19. 2023

칼리할매의 깜짝 쿡 n 딜리버리

- 칼리할머닌 호주 스타일 •9

2023. 3. 19. 일.


쾌유는 반가운 단어입니다.


위의 글을 보시다시피, 작년 10월 6일까지, 칼리할머니네와 저의 이야기를 8회까지 업로드하였습니다. 그러다 할머니가 덜컥, 위암투병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투병 중이긴 합니다만, 많이 호전된 상태여서 <칼리 할머닌 호주스타일 •9>를 다시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1회 ~5회까지는 저의 브런치북, 호주 《어느 시골에 살다》에, 6회~8회까지는 《호주 어느 시골에 살다 2》에 각각 속해 있습니다. 눈이 반짝이며 굵은 칼리할머니는 82세이며, 릭 할아버지와 64년째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선하고 귀여운 레이디입니다. 릭할아버지는 매우 부지런합니다. 우리 타운하우스 12집을 대표하여 가든 일을 도맡아 꾸역꾸역 처리하고, 옆집인 우리 가족에게도  따끈함과 푸근함을 안겨주는 마음씨 좋은 호주할배입니다.


어제는 칼리가 마실을 두 번 왔습니다.


이불에 들어갈 꽃을 부지런히 뜨개질하고 있는데, 딸깍, 하고 우리 집 뒷문 따는 철소리가 들려왔지요. 그 문을 따고 들어오는 사람은 칼리밖에 없습니다. 홍~, 너 여기 없어~? 하며 농을 한 마디 , 던지며 파란 모자를 쓴 그녀가 베란다 앞에서 생긋거리고 서 있습니다. 항상 웃음을 달고 살아서 그런가. 지난주 브리즈번에서 여덟 번째 암치료를 받고 온 할매답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싹처럼 릇파릇해요.


그녀가 지난 반년동안 암투병을 하는 사이, 난 해 드린 건 별로 없습니다. 그저 할매가 웃음을 잃지 않게끔 함께 많이, 웃어드렸습니다. 밥이 보약이라는 지론은 서양인에게도 적용될까 하여 가끔 드린 부침개, 잔치국수, 비빔밥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평소 먹는 음식에서 조금만 더 낙낙하게 해서 나눠드리면, 두 분은 팝콘 같은 웃음과 포근한 하트 돌려주시니, 제게도 행복 두 배였습니다.


며칠 전에는 <배부른 게임>에서 제 딸한테 딴 돈으로, 한인식당에서 매운 양념치킨 두 개 시켰습니다. 한 개는 그분들께 갖다 드렸습니다. 두 사람은 바삭하고 매콤한 음식을 좋아합니다. 겉속촉 치킨이 칼리한테 직빵으로 통한 모양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칼리 어제, 두 번씩이나 우리 집으로 마실을 셨지요.




이따 너한테 음식해서 갖다 줄게.

오전에 우리 집에 온 칼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칼리, 노노, 괜찮아. 넌 좀 쉴 필요가 있어. 안 그래도 돼. 하며 난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시지요. 영어는 경어체가 없고 어르신도 이름을 막 부른다는 것을요. 그러다 보니 스무 살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할매와 난 그냥, 막역한 친구처럼 지내고 있네요. 그래도 고집쟁이? 그녀우리를 위한 저녁 쿡을 이미, 다 준비놓았답니다. 


딸이 몇 시에 퇴근하는지 물어서 5시 피엠에 온다고 했더니, 치킨 앤 릭파이를 만들어서 갖고 온다네요. 그러면 내가 그때쯤 가지러 간다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만히 있으랍니다.  안 들으면 한 대 때린다나요. 덕분에 저는 어제 하루종일, 거실에 편안히 앉아서 꽃이불에 들어갈 색색의 꽃을 뜨면서, 그녀의 치킨파이를 기다렸습니다. 오후 한 시부터 그쪽으로 목을 고 있었지요. 


그래, 그녀가 정확히 오후 다섯 시에, 어린 왕자 되어 등장합니다. 찰칵, 하고 예의 그 철문 따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반사적으로 그녀를, 아니 서양쿡, 치킨푸드를 맞으러 나갔습니다. 리는 자신이 젊은 시절에 손수 만들었다는 프리티한 딜리버리 천가방을 어깨에 이쁘게 매고 생긋, 소녀처럼 웃고 서 있습니다.


오~, 칼리 잠깐만.

칼리가 우리 거실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난 폰을 급히 찾아와서 카메라를 얼른 열었습니다. 네가 너무 이뻐서 사진 하나 찍어야 돼, 하자 센스쟁이 칼리, 생긋 포즈를 취해줍니다. 역시 칼리도 나누는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듯, 오전에 본 모습보다 더 기뻐하는 낯색이 역력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카메라도 더 신이 납니다. 찰칵찰칵, 여러 장을 찍었어요. 천가방도 이색적이고 너무 다정해서 몇 컷  찍어봤답니다. 그 와중에도 칼리의 위트는 쉬지 않았지요. 이거 방금 오븐에서 나온 접시야. 엄~청 뜨거우니까 너 손가락 다 태우지 말고 조심해! 헤헤.



마침 딸이 5시 20분에 돌아왔습니다. 호주할매의  쿡,  뜨거운 "치킨 앤 릭파이"도 내가 드린 한국형 "양념치킨"처럼, 겉바속촉한 게 엄청 드럽고 맛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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