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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Apr 14. 2023

이혼날을 받아놓은 사람들



우린, 결혼날 받아놓은 사람들은 본다.

2023. 12. 20. 그들은 이날을 이혼날로 정해놓다. 하이, 홍. 혹시 너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해 줄게. 간혹 나를 만나면 그녀의 남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래, 고마워,라고 대답하였으나 한 번도, 내가 스스로 처리 못할 집안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의미는 힘든 일 척척,  스스로 해낸다는 거다. 웬만한 집안일은 머리로 하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날은 그의 여자가 우리 집 앞의 불필요한 나무를 가리키며 같이 뽑아내자고 하였다. 나뭇가지가 자라면서 창문 방충망을 뚫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녀의 말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나와 그녀가 힘을 합하였다. 가녀린 나무의 허리를 네 개의 손으로 꼭 붙잡았다. 그리고 , 원투, 하는 구령을 붙여가며 조금조금씩 조이다가, 흔들거리는 이빨 잡아 뽑듯 동시에 확 잡아당겨 뽑아낸 적도 있다. 칼리 할머니가 보시고 잘했다며 깔깔깔 웃기도 하였다. 어느 날은 그 여자가 던진 우스갯소리로, 우린 다 같이 하하 호호 하며, 동서양의 세 여자가 하나로 어우러져 한바탕 웃은 적었다.




그러던 그 여자와 그 남자가 이혼날을
받았단다.


의 부부 세계 난 모른다. 다만 들은 작년 11월부터니까, 5개월째 별거 중이다. 자가 아주 멀리로 이주해 버렸다. 호주의 법은 12개월 동안 별거함을 채워야 이혼사유가 성립된다고 한다. 64년차 결혼생활 중인 칼리할머니는 나한테 몇 번이나 '그들은 바보들'이라며 왕방울만치나 굵은 눈을 더 그랗게 뜨다. 나도 맞다고, 맞장구를 치곤 한다. 


우리와도 불어 살아온 날이 아깝, 떨어져 살아갈 날이 안타까워서다. 그 남자 79세, 그 여자 70세. 지금 이혼해서 얼마나 영화를 보겠다고 이혼을 할까. 아니, 죽어도 같이 살기 싫어서겠지. 보기엔 멀쩡, 아니 인심 좋은 그 남자는 두 번째 이혼남이 되는 거다. 그 여자는 첫 번째 사별하고, 이 남자와 15년을 살았다.


그 남자는 여기서 기차로 22시간이 걸린다는 곳에 가서 서로 떨어져 산 지 5개월이 되었고, 함께 살던 우리 이웃집에서 그 여자만, 아무 탈없이 잘 사는 척하는 모습으로 덤덤히 살고 있다. 요즘은 어쩌다 나와 만나면, 내가 이렇게 안부를 물어본다. 하우 아 유? 그러면 그녀 천연덕스럽게도 이렇게 대답한다. 아 임 파인. 굳. 하는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연을 르고 보면 타인의 속내는 잘 모른다. 그냥 속는다.


그럴 때마다 나도 아임 글래드 투 히어 뎃, 이라며, 아무것도 모른 척 그저 추임새를 넣는다. 내가 도와줄 방법은 그거 외엔, 노 아이디어다. 사실 난 이전에도, 지금도 이혼하는 커플을 곁에서 지켜보지는 못했다. 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혼하는 사람들 치고,  남자와 여자만큼 태연자약하게 이혼을 진행하는 커플은 없을 듯싶다. 이혼날까지 받아놓은 그들보다 내 맘속이 더 복잡한 것 같다. 나는 속으로 혼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렇게 어본다.



황혼이혼은  이런가.
호주이혼은  이런가.

그 와중에

사실은 마음이 찡하다.
그들은 지금 얼마나 힘들까.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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