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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Mar 30. 2023

이웃집 할머니의 꽃을 뜨다


내가 봐도 쏘 프리티해간다.



우선 마음을 다해서 다. 코바늘땀을 너무 타이트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을 편물이 나오도록 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바늘을 나의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이 자연고 부드럽고 순해야 한다. 실,  손가락, 마음이 흐트러짐 없이 삼위일체가 될 때 편물도 자연하게 나온다.


색상은 튀지 않은 걸로 정했다. 이 동네 털실가게 폿 라잇에 가서 한참을 서성이며 골랐다. 마침 40% 세일하는 실에도 색상이 다양했다. 너무 무거운 색도 이번에는 지나친다. 밝으면서도 마음 어루만질 수 있을, 그런 색상으로 골라보았다. 너무 많은 분홍과 엄청 다양한 보라 사이에서,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두 개의 색상을 집어 들었다.


성급하게 짜지 않다. 그럼에도 내 손놀림은 빨랐다. 올 5월이면 손뜨개 1년 차 경험자의 속도와 상관없. 코바늘을 든 내 손은 늘, 째깍째깍 거리며  바쁘게 돌아가는 초침을 닮는다. 손뜨개에 있어 속도라는 건, 경험과 비례하지 않음을 난 알고 있다. 블랭킷 바디스교실에서 보아온, 70년 차 미리암 할머니의 뜨개가 그랬다. 그녀의 코바늘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이다. 난 급하거나 실이 엉겨 짜증이 날 때마다, 한결같은 그녀의 도의 질감을 떠올린다.


 시간을 율적으로 이용다. 좁쌀만 한 땀, 한 땀씩 두 땀씩 서 평면을 이루  편물을 짜는 일은, 몇 초의 시간 알뜰주워 담는 것도 기술이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잠들기 전, 잠이 오지 않을 때, 실과 코바늘과 짜이는 편물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실을 걸어 시간을 모은다. 심심하니 영어공부 너튜브를 틀어놓고 꽃잎을 뜬다. 이번에는 ""이라는 어 드라마 틀어놓고 다. 그럴 때마다 편안해 마음으로 을 들고 하염없이 긴 시간 동안 앉아있을 수 있.


색상조합은 딸과 상의한다. 번에는 이 이불의 주인인 칼리할머니한테 먼저 물어보았다. 저번 나의 편물에서 두 개의 색상을 고르라 했더니, 크림색 바탕에 분홍과 보라꽃을 선하셨다. 안 그런 것 같아도 실가게에 가보면 분홍도 보라도 색조가 다양하다. 막상 찾는 색상이 없을 때도 있다. 그때는 여러 번 요리조리 색깔을 맞춰보면서 픽업해 온다. 떠보니 생각보다 조합이 잘 맞아 이쁘다고 딸은 칭찬을 했다. 다행이다. 그리고 이음 선은 노랑보다 하늘색이 낫다고 도움을 주었다.


색상과 감과 마음이 합하여 이웃집 칼리할머니의 무릎이불이 완성되어 간다. 난 오늘 오후에 완성 할머니의 이불을, 한국산 보자기에 고이 싸서 할머니한테 전해드릴 거다. 작년 9월부터, 오랫동안 위암투병을 씩씩하고 유쾌하치료받아 오신 이웃집 할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린다. 국적불문 유쾌한 칼리할머니의 남은 투병을 응원하며 뜬다. 그녀의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 줄 무릎이불을 다. 이후가 되면 드디어 완성될, 이불과 조우하실 내 이웃 할머니의 표정이 궁금하다.


고국의 봄처럼 따스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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