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네 Mar 11. 2023

오늘은 깻잎김밥

- 내일은 생미나리 비빔밥


좁은 뜰에도, 있을 건 다 있다.


파, 상추, 열무, 깻잎, 고추, 부추, 미나리는 뜰의 자투리 터와 화분에 산다. 소박하게 터를 확보한 들이 있어 난 늘 뿌듯하다. 꽃이 지고 씨앗이 여물 때마다 기다려 씨앗을 보관했다가 다시 뿌린다. 미나리와 부추는 뿌리를 잘 보존한다. 특히 여기서 힘들게 구한 미나리는 더욱 애지중지한다. 다른 채소는 딸과 같이 먹지만 생미나리는 나 혼자 먹는다. 나에게 향수음식인 미나리향을 딸은 지독히도 못 먹는다. 속이 그 향을 안 받는단다.


난 딸이 없는 점심시간에 보드라운 미나리를 뜯어서 된장 고추장 참기름 깨소금 긋하게 뿌려 양푼에 쓱쓱 비벼 먹는다. 미나리향은 참기름 토종 된장과 어울려 한껏 풍미를 발휘한다. 혼자라서 고요 속에 잠기듯 향그러운 맛을 더 깊숙이 음미한다. 에서 자라는 미나리를 나 혼자 다 못 먹을 땐 미나리가 나무꾼 손처럼 억세어진다. 그때는 칼로 쓱쓱 도려다가 파랗게 삶아서 참깨 송송 뿌려 초고추장에 무쳐놓으면, 그땐 또 딸이 수저를 들고 맛있다며 달려든다.


요즘 뜰엔 깻잎이 풍년이다. 일전에 며칠 집을 비울 때, 깻잎에 물은 자주 못주는 대신, 영양제라도 좀 더 낙낙하게 먹으라고 비료를  주었다. 인심 좋은 할머니처럼 다담다담 깻잎  비료알갱이를 심듯이 놓고 다녀왔다. 그 사이 비가 내려준 덕도 보았지만, 영양제를 흠뻑 들이켜서인지 깻잎은 너풀너풀 춤추는 무희가 되어있었다. 바람의 리듬에 맞춰 잎사귀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은 어리고 포기 수 많지 않아 깻잎김치를 담을 양까지는 안되었다.


어제 그놈들을 똑똑 따다가 딸이 즐겨 먹는 깻잎김밥을 말았다. 내 입맛은 생미나리나 깻잎이나 두 가지 다 동일한 맛의 코리언 허브데, 딸의 미각은 깻잎만 잘 받아들이니, 그녀 입맛이 가끔은 신기하고 때론 얄궂게 느껴진다. 글을 쓰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 나의 젊은 시절도 그녀처럼 입맛이 짧기는 했었다. 그때는 지금만큼 생미나리가 엄청, 맛있지는 않았다. 지금 미나리는 나의 젊은 날, 과수원 질퍽한 논둑에서 자라던 그 미나리에 대한 향수였다. 씨를 뿌린 듯 북수북 널려있던 그 미나리에 대한 그리움이 깊상큼 .


깻잎김밥을 말다가 미나리밭으로 새고 말았다. 나에게 두 녀석들은 모두, 한국에서 온, 향수를 유발하는 채소니 똑같이 소중한  들이다. 별히 이번 깻잎엔 영양제를  주고, 자라는 모습에 신경을 더 많이 썼다. 집 떠날 때 애달파, 돌아와서 푸르게 제 터를 잘 지켜준 깻잎들에게 반가움과 칭찬의 마음으로 바라보아서 그런가. 깻잎향이 유난히 더 향그러웠다. 


그놈을 잔뜩 넣어 김밥을 만들었더니 단무지가 뒤로 밀려나고 향긋한 깻잎향이 주인이 되었다. 딸이 일터에서 돌아와 김밥엔 사발면을 끓이더니, 야금야금 거의 두 줄을 치웠다. 그러더니 이런다. 엄마, 오늘 깻잎은 향이 찐해서 더 맛있네. 어, 울 딸 깻잎박사 다 됐네. 난 속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겉으로 그냥, 응 맛있지, 많이 먹어, 하면서 웃다. 내가 그치그치하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하면, 엄마, 그거 전에도 백 번 말했어, 이럴까 봐 이번엔 잠자코 있는다. 오늘.


내일 런치는 생미나리 비빔밥이다.
고독에잠겨 미나리향에 갇힐 걸 생각하며 벌써 입맛을 다신다.





이전 09화 남이 짜놓은 언어 함부로 훔쳐가지 마시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