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네 Mar 27. 2023

꽃도 슬플 때가 있을까?


꽃 속에는 밝은 영혼만 존재할까.


나무의 보드라운 결을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꽃망울을 터트리며 '꽃싹'이 돋는다. 아이를 낳을 때 겪는 산고는 길 하루지만, 나무에 매달린 꽃망울이 다 터지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린다. 꽃나무는, 긴 산고를 겪고도 점점 밝은 모습으로 세상을 대하기에 아름답다.


꽃의 종류가 다양하듯 사람의 마음씀씀이도 각양각색이다. 작은 슬에도 온몸으로 울부는 사람이 있고, 별것 아듯한 행복에도 우주를 얻은 듯 하늘을 나는 사람이 있다. 과 기쁨을 운명처럼 덤덤하게 수용하는 사람이 있고, 의 네 잎 클로버를찾느라 행복의 세 잎 클로버를 짓밟는 사람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은, 슬의 자리에 기을 피서 작은 열매를 달 수 있는 꽃나무 같은 사람이다. 잘못 찾아시나 원망하지 않고, 애정의 으로 주을 돌아보고, 고배의 의 잔을 마셨을지라도, 원인을 분석하여 다음을 차분히 준비하며, 하현달이 있던 자리에 상현달이 다시 뜨리라는, 망을잃지 않는 사람이 좋다.


가슴속에서 슬픔을 재우고 기쁨을 불러들이는. '잡을 수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리에 들이붓는' 행위는 창작만큼 고통스럽기에 예술처럼 숭고하고 아름답다. 나는 꽃을 봐도 웃고 웃는 사람을 봐도 함께 웃는다. 마음이 근심 정으로 짓눌리게 될 때, 그것을 아내려고 일부러 웃기도 하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화가 나 있다가도 상대방이 웃으면 따라 웃을 때가 많다.


잘못을 한 아이에게 짜증을 다가도 "엄마, 다음에 잘할게요. 엄마 사랑해" 하고 재 피우 함께 웃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끼리도 친구가 잘못해서 한 대 때려 주고 싶을 때, 상대 아이가 웃으면 픽. 따라 웃는다고 한다.사람은 어른과 아이의 꽃으로 웃고 꽃나무는 화원의 꽃과 야생화의 모습으로 웃는다.




의 난초는 스스로 하거나 자신이 해서 하는 일은 없다. 최적의 수분과 양분을 주는 만큼만 받는다. 완만한 곡선과 단아한 초록으로 기품을 유하고, 한 개의 꽃대에서 고매하게 피어오르는 난초의 꽃과 향은 강렬하게 피어오르는 영산홍보다 절제미와 우아미가 돋보여야 한다. 그러고도 자신을 능가하는, 더 고매하고 도회적인 꽃나무가 나올까 난초는 염려스럽다.


이름 모를 무덤가나 바위틈에서 피어난 제비꽃은, 몸이 아가는 가뭄 속에서도 물 한 모금 주는 이 없어 외롭게 몸살을 앓다가, 자신보다 더 말라 뒹구는 낙엽을 바라보다 꽃을 피운다. 낙엽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꽃이 될 수 없지만, 제비꽃은 생명이 있다는 안도감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꽃을 피운다. 말라 뒹굴던 낙엽마저 사라질까 제비꽃은 몸을 낮추어 핀다.


꽃이 피면 알이 자라지 않는다고 나오자마자 꺾임을 당해야 하는 감자 꽃은, 자주감자 하얀 감자 꽃빛으로 알려주어야 하고, 온몸으로 화를 감수하는 동백꽃은 먼저 간 꽃들이 가하여 붉다 못해 핏멍울로 떨어진다.


"마음으로 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몸속에 있기 때문에 

꽃은, 핀다"


어쩌면 내 마음도 안도현의 이 시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 "솔직히 꽃나무는 꽃을 피워야 한는 게 괴로운 것이다." 꽃- 번뇌를 승화시켜 점점 환하게 웃기에 그의 눈을 예술이라 한다.


주디스 홍작가님의 글에서 보고 힌트를 얻어서, 저도 돌에 옷을 입혀보았습니다. 신선한 게, 저의 글 속 꽃만큼, 예술이지 않은지요. ^^

이 글은 2006년도 발행한 제 서책 《물빛》 에 게재된 글입니다. 오래된 글에 저의 젊음과 봄이 스며있어서 아련한 시간을 그저 공유해봅니다. ^^
이전 01화 고독의 환타지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