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무덤 없다고, 내게도 이유는 이랬다. 지난주도거의 1년 동안 다니던 "블랭킷 버디스" 교실에 갔었다. 그날은 좀 일찍 가다 보니 빈자리가 많아서 적당한 자리를꿰고 앉았다. 멤버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은 하이, 홍, 하며 나에게 미소 띤 눈인사만 하고 다들 자기 친구 곁에찰싹 붙어 앉았다. 그리고 자기네들끼리 잉글리시,꼬부랑 수다를 블라블라 떨기 시작했다.
별안간 나의 절반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가 되었다. 가족들에게 소외당한 다섯 살 제제는 자기 속마음을 의지할 데가 없었다. 소녀는 집 앞 오렌지나무에게 가서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래, 난 뜨고 있는 꽃송이한테 눈길을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호주 할머니들의 블라블라 수다를 주워 담으려고 귀를 기울여보았다. 그녀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들릴 듯 잘 들리지 않았다. 두어 시간 동안 그냥, 부지런히, 털실을 손에 걸어 꽃을 만들다가 집으로 왔다.외로워서였을까. 미열과 두통이 왔다.
그 이튿날, 목요일은 U3A문화센터에 갔다.
앤과 제인이 반겨주었다. 칠순의 앤은 젊은 나에게 의자까지 갖다 주며 친절을 베푼다. 오랜만에 오신 벨로리 옆에 앉으란다. 다리수술로 6개월 만에 보는, 팔순이 다 되어가는 벨로리는 자기 남편과 40년 전에 오픈한 철물점 문을 9시에 열고 2시 30분에 닫는단다. 요즘은 오는 사람, 가는 손님과 이야기하는 재미로 문을 연다고.
오래되어 익숙해진, 40년 동안 정이 푹 든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며 그 사람들과 이런저런 삶을 나누며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오늘도 그녀 손은손주를 위한 동화책 커버를 바느질하고 있었다. 그녀가 짓던 천의 꽃무늬는 장미꽃만큼 화려하지 않으나 안개꽃처럼 수수하고 정겨웠다.
짧은 시간에 인생의 전부를 말하진 않았으나, 멀고 먼 시간, 그 40년을 한 자리에서, 동일종목의 가게를 이어가며, 그들 부부는 별일을 다 겪었을 게다. 누군가는 사간 물건이 맘에 안 든다고 붉어진 볼살을 부르르 떨었을 테다. 때로는 좀도둑도 들었을 테고, 더러는 돈을 안 받고도 물건을 내어주거나, 밑지는 장사도 했을 테다. 그들의 젊음에도,고되고 외로운 날들이 좋은 날보다 더 많았을 게다.
40년, 그 속에 든 히스토리는 다 그녀의 가슴에 저장되어 있다가 스스로 스러지거나, 한풀이처럼 이야기하는 것으로 한을 녹이거나,이젠 오랜 벗이 되었을, 가게로 놀러 오는 손님들과 마주 앉아, 즐거운 추억으로 서로 수다를 하며 매듭을 풀어낼 수도 있을게다.무엇보다, 오래 견딘 보람과 자존감도 상당할 게다.
벨로리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블랭킷 버디스'에서 뾰족해졌던 내 마음이 둥그스름하게 다듬어지고 있었다. 외로운 제제는 고독한 제제가 되고 있었다. 홀로 되어 나에게 온전히 집중한다는고독, 난 고독한 예나네가 되기로 했다. 나도 오래, 여기 호주 할머니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내 삶의 히스토리를 잘 이어가기로 작정했다.지금도 나의 영어가, 호주에서의 내 삶에 조금조금 스며들고 있을 것이다. 나의 언어가 현재진행형 긍정의 방향으로 움직임을난 믿는다. 나의 고독을 든든한 친구 삼기로 했으니까.
저 붉고 뜨거운 태양이 홀로 아름답던가. 고독한 시간을 하염없이 하늘강을 건너며, 더불어 아름답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