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에 들자 두 살배기 아이가 우는 시늉을 했다.
저린 가슴으로 내가 아이를 꼭 껴안았다.
그가 떠난 후, 그에게 갈 때마다 흐느끼던 제 엄마의 가슴을 아이가 먼저 반응한 거다. 자식한테 엄마의 성정이 이렇게 스미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그 날 이후 나는 아이와 그에게 갈 때면, 가슴을 지그시 누르곤 했다.
남편이 떠난 후 나는 아빠, 엄마, 아이들이라는 정형된 가족의 구조에 목이 말랐다. 아이들을 데리고 음식점에 가거나 여행을 하거나 또 아이들 학교를 방문할 때, 색깔 다른 우리 가족의 리본을 자꾸만 감추고 싶었다. 다른 집의 리본이 예쁜 꽃분홍이라면 남편이 빠진 우리 집 리본은 칙칙한 회색 같았다.
이처럼 나는 남편의 부재에 대하여 세상과 온전히 소통하지 못했다. 빨랫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입을 꽉 다물어야하는 빨래집게처럼, 심장을 꼭 누르는 짱돌처럼, 천공을 짊어진 아틀라스처럼 내 생애의 무모한 짐을 스스로 떠받치고 살았다. 아이들과 사는 것보다 그 짐의 무게가 더 힘겨울 때가 많았다.
그러다 몇 년 전에 아이들 교육문제로 호주에 왔다.
어느 날 딸아이와 브리즈번 근교 여행지의 숙소에 들었다.
밝고 친절한 주인아줌마는 자신의 남편이 회계사이며 자신들은 몇 개월 전에 재혼한 커플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또 다른 여행지에서 만난 한 젊은 남자도 우리 둘을 보더니, 자신은 한국여자와 5년을 살다가 딸 하나를 두고 헤어졌다고 한다. 여자한테 남자친구가 생겨서 이혼했다고. 그러고도 이 나라 사람들은 친구가 되는데, 그 코리언은 자신과 원수처럼 지내려고 하니 안타깝다고.
나는 마음을 열고 사는 이들의 자유가 부러웠다.
아모르 파티는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말로써 인종忍從만 하는 게 아니다.
자신에게 닥친 시련까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온몸으로 사랑할 때, 거기서 창조성과 자유가 생성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돌덩이로 예술을 만들면서, 정작 사람은 왜 돌덩이인 것을 가만두려 하는가, 하는 소크라테스의 질문과도 같은 맥락이다.
나의 지난날을 가만히 만져본다. 인내. 성실. 사랑. 이런 추상어들을 껴안으려 노력했다. 가까운 지인에게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눈을 감고 고요히 묵상해보면, 내 안에서 공허 같은 것이 잡힌다.
나의 껴안음은 형식적이었다. 그래서 세상과 나 사이에 구멍이 생겼다. 내 삶은 담담하고 당당했으나 쫀득쫀득하고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감촉이 없었다.
내 속에 든 빨래집게와 짱돌을 하나씩 뺀다.
아틀라스의 짐을 내려놓는다. 시원하다.
운명에 밀착하여 내 운명을 사랑으로 꼭 껴안는다. 가볍다.
세상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니체의 창조와 자유를 구한다.
아모르 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