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바보는 눈치 없는 사람이란다. ㄴ이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데 딴청만 피는 ㄱ을 보고ㄷ이 쏜 언어의 화살이다. 화살이 빗나갔는지 ㄱ에겐아직도불이 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애에 빠져있는 ㄱ을 바라보는 ㄴ은 ㄱ이 들꽃이라도 되는 양, 마냥 바라볼 수 있음이행복해한다.
ㄴ에게는 ㄱ이 전부이고 ㄱ은 ㄴ이 한 부분일 뿐이지만 그래도, 곁에 있어 좋다. 그렇다고 ㄱ은 ㄴ을 외면하진 않는다. 외로울 때 다가가 함께 ㄷ을 만들기도 하고,엎어졌다 물구나무서기를 했다 하면서 역할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그냥 좋은 벗이니까. 그럴 때마다 ㄴ이 ㄱ에 거는기대치는 올라간다.'특별히' 좋은 벗이니까.
그들보다 한 획이 많은 선배 ㄷ은, 둘의 관계를 훤하게 꿰뚫고 있지만 자신의자리에서 어여쁘게 바라보아준다. 셋은 필요할 때 서로 마주보다가 다시 제자리로돌아선다. 각자 일상의 배를 타고 숨 가쁘게 노를 젓는 것 같지만 자고 일어나 보면 늘 그 자리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양과 색상을 선택하고조합하여인생의 띠를 만들어나간다. 무한대의 고통을 내포하고 무한대의 비애를 지니면서도, 그에 비례할 미지의 희망과 사랑또한 존재한다는것을 믿기에 늘, 어제의 자리로 되돌아가 내일을 위한 호흡을 고르곤한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지구가 자전하는 곳에 살아서 그런 건가.
둥글게 등이 굽은 인생의 띠를 장식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늘 그 자리에 있다. 사람이 죽거나 생이별을 겪어슬픔에 빠져있다가도, 시간을 통과하면 본연으로 되돌아온다.책상, 컴퓨터, 책장이 모두 그전 그대로인 방으로 되돌아온다. ㄱ도 ㄴ도, 우리 모두의 삶도, 다 그렇다.
늘 그 자리인 촌놈들, 요즘은 촌에 산다고 촌놈이 아니란다.같은 자리에 머물다 낯선 곳에 가서 굼뜬행동을 하다 보면 촌놈이라 불린단다. 서울사람이 시골에 가도 촌놈이고, ㄴ의마음을 모르는 ㄱ도 촌놈이다. 다수인이 아는 것을 홀로 몰라도촌놈으로 통한다. 식물의 이름을 모르고 채소를 먹을 줄 모르는 서울사람이나, 예술의 깊은 뜻을 모르는시골사람이나 다 촌놈이다.
누구나 한두 번쯤은 촌놈이 된 적이 있는데, 촌놈 소리를 들은 사람은 겁먹은 자라목처럼 잠시 위축된다. 차라리 자신이 촌놈인지도 모를 때기가팔팔하다. 사람들이 다방면으로 귀 기울이는 이유는,촌놈소리 듣지 않기 위한 행동인지 모른다. 그러나 촌놈에겐 어리석음보다 순수가 어려 있어서일까. 그 단어에는 부정보다 긍정이 더묻어 나온다.
그래서일까. 촌놈을 고집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촌놈임을 고집하는 미개인. 요즘은 촌놈을 오래 고수하다 보면미개인이 된단다.남들은 이메일로 전하는데 펜으로 편지를 써서 우체국까지 가서 부치는 자칭, 미개인이라는 친구는, 워드작업을 안 하고몽당연필로 칼의 노래, 현의 노래를 써 내려간 소설가 김훈도미개인이라며, 김훈과 지기라도 된 양, 왠지 우쭐해한다. 버스 탈 때 카드를 대지 않고 지폐를 넣는 사람도 미개인이란다.디지털의 세상을 아날로그로 역주행하는 자를 보고 미개인이라 한단다.그럼 미개인을 역주행하면 무엇이 나올까.
오래된 미래
바보를 지나고, 촌놈을 통과하고,미개인을 거치고, 시간을 거꾸로 계속 가다 보면 '오래된 미래'가 나온다. 작은 티베트라불리는 곳에서 자연처럼 살아가던라다크 사람들을 문명의 눈으로 바라보면, 모두가 바보고 촌놈이고 미개인이다. 순종 촌놈인 그들은 늙어도 웃음의 때깔이 어린아이만큼 투명하고 맑고 아름답다.
그들의 생활은 고상한 은유와 직유가 따로 없어도 그 자체로 신성하다. 언어학자이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그들의 자연친화적인 순수에 매료되어16년간 그곳에 살면서 라다크를 묘사한다. 그녀는 라다크의 생태학적인 '과거'의모습을 보고, 오래전부터 예견된 인류의 '미래'라 했다.
바보나촌놈, 미개인이나 오래된 미래가 지니는 공통점은,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그곳을 천국으로 알고 자신에게 충실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바보, 촌놈, 미개인이라는, 조금 폄하된 불림에도 개의치 않고 삶의 궤도를 꽃잎처럼피워내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바보가 되거나 촌놈이 되거나 미개인이 되는 그런 날이 가끔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는다면 거부하겠지만, 디지털의 시대를 쫓아가기 버거울 때마다 그들을 그릴 때가 종종 있다.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문명과 이기를 내버리고 바보와 촌놈, 미개인과 오래된 미래로 건너가고 싶을 때가있다.
저편에 있어 그리울까.
바다 아득히, 평원 저 너머 -금 그어진수평선과 지평선. 지구가 동글어서 생긴 끝 모를포물선. 열려있으나 보이지 않는 저쪽의 세계를 동경하게 하는 유연한 선. 끝없이 드넓은바닷가에 서 있다 보면 저편을 향해 건너가 보고 싶어 진다.그곳 사람의 표정과 몸짓그리고 펼쳐질 풍경이 궁금해진다.
바닷가 저편에 바보와 촌놈, 미개인이 사는 오래된 미래가 있다면 나도, 그쪽으로 건너가 그들과 하룻밤쯤 묵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