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를 읽다 보면 웃음 터지는 장면이 나온다.
순금으로 노예를 묶는 사슬과 족쇄를 만들고, 금귀고리와 금반지를 중죄인에게 씌워준다. 진주와 다이아몬드를 어린이들의 장식품으로 사용하는데 아이들이 처음엔 보석들을 자랑하다가 나이 들면 싫증 나서 버리게 된다.
어느 날 외교사절단이 보석과 금으로 장식하고 유토피아에 온다. “엄마, 저 바보들 좀 봐. 저만한 나이가 되어서도 보석을 달고 다니다니.” 그러자 어머니는 “저 사람은 사절단을 시중드는 광대”라며 입단속을 한다. “금줄이 너무 약해서 저 노예는 쉽게 끓어버리겠다, 도망갈 생각만 있으면 언제든지 벗고 달아날 수 있겠다”며 비웃기도 한다.
또 ‘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있는데 별보다 희미한 작은 돌조각에 미혹되고, 양털 옷을 처음 입고 있었던 것은 양들인데, 질 좋은 양털 옷을 입었다고 양보다 더 훌륭해질 수는 없다’는 기지는 기막히게 기발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그것을 칠더스의 어떤 골프장과 백패커 메모리얼에서 체감했다.
먼저 번다버그에서 내륙으로 오십 분 정도 달리다 보면 ‘아이시스 골프장’을 만난다. 틴에다 돈을 넣고 골프를 치는 무인시스템과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매달린 모래 양동이가 앙증맞아 들어가 본 장소다.
무인 농산물 판매대는 간간히 이용했으나 무인 골프장은 처음 와본다.
백오 년이 되었다는 이 골프장, 연간회원권이 삼백육십 불이며 비회원의 그린피는 이십 불로 저렴하다. 학생은 반액, 하이스쿨 커리큘럼에 골프가 포함되니 가끔 학생들이 체육시간에 와서 골프를 친다.
호주에서 골프가 민중의 것이 된 효시는, 애초 이 나라 정부가 인구수에 비례해서 곳곳에 초록 구장을 만들어 온 국민이 즐기는 대중적인 운동으로 출범시켜서다.
만일 골프장이 산속 어딘가에 숨어있었다면, 돌멩이 속 금붙이의 그것처럼 희귀성에 매료된 귀족 스포츠로 전락될 터, 일찍이 이 나라 정책은 골프를 통하여도 국민 저변에 ‘인권 평등성’을 탄탄하게 깔아놓았다.
이천 년 유월의 어느 밤, 백패커이던 ‘더 팔래스’에 불이 났다.
한 사람의 불장난이 단발머리 그녀와 영국, 웨일스, 네덜란드, 아일랜드, 일본, 호주 등 각 나라에서 온 열다섯 명의 고귀한 청춘들 목숨을 앗아갔다. 청춘들은 대부분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이 나라에 온, 칠더스 근교의 어느 농장에서 노동하던 유망한 대학생들이거나 여행객이었다. 이들 중 한 호주 청년은 다른 투숙객을 구하다 영영 나오지 못했고, 쌍둥이 자매도 있었다.
안타까이 여긴 한 초상화가는 열다섯 청춘들의 사진을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토마토 농장 앞에서 활짝 웃는 단체사진을 재현하였다.
그 후 이 건물은 공공기관으로 넘어가고 이천이 년 시월, 휴머니즘을 대변하는 넓고 육중한 이 유리벽, 병자를 살리러 예수 앞에 들여온 침상처럼 이층 지붕을 뚫고 내려온다.
밭 모양을 본떠 청춘의 집들을 지어주고, 그들이 즐겨 다니던 구릉진 곡선의 길 위에다 집 하나하나를 얹어 집마다 등을 밝혀주었다. 집 안에 스무 컷 정도씩의 추억 어린 사진들, 자기 나라의 국기와 나란히 담은 ‘기억의 벽’이 탄생했다. 매년 유월이면 이 앞에 꽃다발이 소복 쌓이고, 그동안 각국에서 온 수십만의 추모객이 다녀갔다.
글로벌화, 무시간화의 이곳에 한국인, 그녀도 있다. 첫돌, 파란 교복의 시간, 학사모 쓰고 부모님과 웃는 모습… 등 그녀의 열일곱 컷 사진 앞에서, 나는 숨죽이며 고요히 서 있곤 한다. 눈물이 잠복하고 있다가 건드려지면서 울음으로 툭 터져 나올 때도 있다.
떠난 사람 쓰던 물건에 마음 베이듯, 이 장소가 그들 부모님께는 상처다. 그러할지라도, 어느 날 숲 속 어딘가로 내던져진 돌팔매처럼,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를 자녀들의 기억함을 재현한 일은 잘 한 일이다. 열다섯 그 청춘들 레테 강 건너 간 준엄한 자리, 우화등선한 상흔의 자리, 이 아픈 자리가 곧 부모님들의 치유의 자리리니.
이 앞에 잠잠히 서 있다 보니 청춘들 웃음소리 유리벽 넘고 흰나비 떼 되어 하늘로 하늘하늘 날아오른다. 그 낮에 이 근교 어느 밭 토마토 따고 그 저녁 곤하게 잠들었을 한국 아이, 해맑은 그녀의 겨드랑이에도 날개가 돋친다.
책무가 아님에도 책무인 듯, 국가를 초월하여 시공된 이 프로젝트는 인간애의 현장이고, 흉내 낼 수 없는 고차원이며 창의적인 아트이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방을 경제적인 용도로 쓰지 않고 무료 기억공간으로 내어준 ‘백패커 메모리얼’, 유한한 시공에 갇힌 태를 벗은 숙연한 외침이다.
한 사람의 철학이 그의 길을 만들고, 한 지도자의 정신적 기지는 그 지역의 인성에 영향을 미친다면, 관과 민, 그 속 core에 순금처럼 박히는 ‘인류애’야말로 우리 정신의 ‘유토피아’가 아닐지.
* 2017. 《현대수필》 가을호.에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