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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Jun 13. 2023

치과 치료 시간은 터프하다

- 잇몸 이식수술

* 2023. 6. 12.  월. 10. 30. am.


새벽에 눈을 뜨니,
겁이 차오른다.


이럴 때 나부엌이 편하다. 야채죽을 끓기 위해 생쌀을 한 시간 정도 불려놓다. 냉장고에 있는 온갖 야채를 꺼내니 가짓수가 꽤 다. 파, 파프리카, 주키니, 양파, 당근. 개수대그득 담긴 야채들을 다듬 씻어 성듬성 , 아날로그 커터기에 다담다담 담는다.  연결된 손잡이를 대여섯 번 당겼는데 컷과 믹스가 한 번에  다. 참기름을 불에 달게 한 후 불린 쌀과 야채다. 짜르르, 고소한 참기름 내음이 올라오며 염려로 킨 마음이 조금조금 녹는다.


단단하던 쌀이 익하고 투명 가변화를 보면서 나무주걱으로 사부작사부작 저어다. 서로 어울리는 모습이 뻐진다. 참기름 흰쌀과 오 야채류를 끌어안으며 음식 된다. 오늘 내 치아를 치료해 줄 치과의도, 내가 음식을 쿡하는 데 온도와 순서를 지키듯 이렇게, 내 치아를 쿡해  터, 그녀의 손끝에서 나의 치아가 점점 말갛고 멀끔해질 테다. 모양새가 점차 말쑥해질 이빨이, 순차적으로 가지런하게 짜 맞춰질 테다. 오늘 불량한 내 잇몸이, 내일은  팀목될 테다.



치과에 들어선다.


몇 번 얼굴을 마주하며 도움을 받은 적 있는 리셉션 그녀하이 홍, 하며 웃는다. 낯섦이 다정해지면서, 집에서 사인해 간 페이퍼를 접수한다. 오늘 내가 받을 치치치료 한 개다. 다행히 이빨을 뺄 만큼 중증은 아니다. 하지만 잇몸이 너무 내려앉아 잇몸 살을 입천장에서 빌려오는 이식수술을 할 거다. 그 시간이 총 두 시간 반이 걸린다고, 지난번에 코리언 덴티스트, L이 소상히 설명해 주었었다. 한국인이어도, 이번에도 L은 조곤조곤 영어로만 말을 걸어온다.


역시 저번처럼, 하나도 어렵지도 어색하지도 않게 해 주었다. 그녀를 도울 어시스트 간호사, B 친절하다. 나는 오늘도 예의 그 치과의 베드이불을 덮고 누워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목을 좌우로 돌 천장 스크린영어자에 시선을 두고 헤드폰을 듣기 시작했다. 그래도 정신은 입속 공사판에 초집중됐다. 입을 엄청 크게 벌려야 할 때마다 입이 아팠다. 그때마다 B가 켜 준 천장의 드라마 속 인물들이, 통증과 힘듦을 완화시켜 주었다. 섹슈얼 한 장면에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스크린 바깥의 그녀 둘은 내 가슴 위에서, 엄청 여러 개의 쇠붙이들을, 아주 재바른 손짓과 눈짓으로 주고받으며 내 입속을 치료해 나갔다. 이번엔 르르륵, 크르르륵, 하 베토벤 운명의 사운드로써 우렁차게 했다. 쇠망치에  이빨 갈리는 괴성도 났다. 얼음판을 휙 돌아가는 스케이트 소리도 다.  


그러고 보니 이 치과에선 한국에서 수시로 하던 가글을, 치료 시작하기 전에 파란 소독물로 딱 한 번밖에 안 시켰다.


그토록 바쁘고 프하 무서운 과치료 와중에, 나의 뇌리에서는 좀, 엉뚱꼬리표가 수면 위 공처럼 오른다. 왜, 치가 생기는 걸까. 이토록 공격적인 쇠뭉치로 갈아도 끄떡없는 돌보다 단단한 치아인데, 어쩌다 까맣게 썩어버렸을까, 하며 나 혼자 묻  다. 이후부터는 치아관리 잘해야지, 하고.  정기적으로 치과에 내원하여 체크받겠다고 맘을 단단히 먹는다. 로나로 인해 4년 동안이나 한국에 있는 치과를 못 간 사이, 낡아진 잇몸이 다.


치과치료 시간은 터프하다.



가끔씩 나는 눈을 꾹, 감고 통증과 무섬증을 참아야 했다. 그러라고 그녀들이 크고 검은 플라스틱 안경을 내 안경 위에다 장착해 놓았다. 내가 부엌에서 계란지단을 정치하게 부치듯이, 그녀들은 내 이빨을 차분 손놀림으로 요리하고 있었다. 내가 부엌에서 감자를 얇게 채 썰듯, 내  살을 떼어낼 땐 무섬증이 더해서 잠깐 구역질이 났다. 그럴 때마다 L과 B는 내가 잘하고 있다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금만 있으면 끝난다며, 어린이처럼 얼렀다. 나도 고맙다고 두 엄지를 세워 화답을 했다.


이식수술이 다 끝나고 L이, 내 입속사진을 한 장씩 넘기며 보여주었다. B는 치통과 부기를 진정시키는 파나돌 두 알과 스테로이드제 한 알을 갖다 놓는다. 이번에도 물과 사과주스 컵이 크리스털이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대접받는 기분이다. 마취가 안 풀려 둔하며 어색한 볼살 속으로, 기분 좋게 알약을 털어 넣고 두 액체를 마셨다. L은  3~5까지는 여전히 아플 거고, 일주일 간 이쪽은 칫솔질하지 말고, 스크램블드 에그보다 거친 음식은 당분간 먹지 말라는...  주의 사항을 말해준 후 다른 환자를 돌보러 나갔다. 녀의 뒤통수까지도 이뻐 보였다.




딸이 픽업하여 집으로 온 지 다섯 시간이 지난 지금, 마취가 금씩 풀리면서 통증이 우르르 몰려온다. 부어오른 내 볼 속에서 림과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래도 실력 있고 친절하고 배려하는 덴티스트와 어시스턴트를 만나 치료를 받아서 마음이 가뿐 가볍다. 호주불 1,719달러(한국돈 150만 원 정도)를 지불했으니, 앞으로 치아관리만 잘하면 된다. 2주 후엔 실밥을 풀러 마실 가듯  거다.


아침에 온갖 집안일을 다 해놓고 갔으니, 당분간 가정주부 휴무다. 아, 얼마만인가.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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