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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May 27. 2023

고장 난 레고를 감쪽같이 맞춰 준 코리언 덴티스트

* 치과 ; 2023. 5. 25. 목



두 번째 치과에 가는 길도 아직은,
낯설었다.


내가 는 자리가 따스한 안이기보다 바깥 같다는 느낌이 살짝 들었다.  시간 동안 치료받을 일이 좀 초조하고 불안했다. 다른 한편으론, 오늘도 지난번처럼 언어의 장벽을 스므스하게 넘어야 할 텐데, 싶었다. 감정의 흐름이 좀 더 자연스레 융화되도록, 운전을 하면서 영어문장을 연습하여 보았다. '나 오늘 12시 40분에 닥터 엘랑 예약해 놓았어.'라고 연극무대에 서는 배우인양 리허설을 반복했다. 다행히 차 안에 있던 그 8분 동안에, 문장이 입에 착 달라붙는다.


치과 들어서자 하이 홍, 하고 리셉션니스트가 친절하게 웃는다. 응, 너 오늘 12시 40분에 예약 있지. 하며 수속을 착착 무리 없이 진행하고, 다정한 간호사를 따라 진료실에 들어갔다. 한국인 그녀, 덴티스트 엘이 생긋 웃는다.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면서도, 약간의 인간미가 엿보여 더 이쁘다. 집을 출발할 때 염려했던 낯섦의 경계가 지워지고 진료실 안이 따스해졌다. 간호사 에이는 무릎담요를 배까지 올라오도록 가지런히 어주면서, 입고 간 카키색 조와 색상이 잘 어울린다며 활짝 웃었다.


누운 진료실이 내 방처럼 아늑해졌다.


서로의 믿음과 신뢰는 지난번 첫 진료에서 이미 감지되었다. 오늘은 그저, 내 입속 전체를 그녀들에게 네 시간 동안 부담 없이 맡기고, 그녀들은 내 불량한 치아 세 개를 끌로 갉아내고, 전기로 갈고, 공간을 메우고, 물로 말끔히 씻어서 레고 맞추듯 제 자리에다 이빨을 끼워 넣는 작업을 하면 된다. 그리고 스케일링을 할 거다.  그녀들을 사랑한다. 그녀들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부엌의 수저처럼 다양한 철기 집기들이 내가 누운 바로 앞 선반에 가지런히 얹히면서, 두 그녀들의 손짓과 눈짓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내 가슴 위로 주고받는 손짓은 마치 현을 켜는 음악 연주자의 몸짓 같았다. 담담하며 차분하고 노련했다. 발랐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천정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인어공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거였다. 중간중간 그녀, 엘이 원하는 대로, 고개를 좌우로 조금 돌리는 일이다. 입을 크게 오래 아, 벌리고 있을 땐 꽤 아프기도 했지만 그건 극히 일부였다.


 성심을 하여 착착, 레고 맞추기를 완성하여가는, 내 딸 또래의 그녀들을 나도 성심껏 도와주고 싶었다. 불현듯 모녀 모드가 된 우리의 삼박자가, 무음의 잘 어울리는 반주로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같은 그 흐름 감응좋았다. 그 와중에 베토벤의 운명 치듯 드륵 드르륵, 내 이빨이 갈리면서 삐시싯 시리기도 했으나, 그 분위기를 깰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까무룩 할 잠을 깨는 반주였다. 그녀 둘의 몸짓은 정말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듀엣이었다.


코리언 그녀, 엘이 어시스턴 에이에게 다정한 낮은 소리로 땡큐, 땡큐, 할 때마다 난 속으로 감탄했다. 겸손을 갖춘 한국인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내게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알아듣기 쉬운 영어로만 이야기하는 그 마음가짐 또한 신뢰를 안겨 주었다. 그녀들은 네 시간 반동안,  한 번도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다. 처음이 끝인 양 줄곧 친절하고 성실하며 진심을 다하는 그녀들은 미래가 보이는 프로였다. 그런 그녀들의 손끝에서 나의 치아가 말갛고 새하얘져가고 있었다. 모양새가 말쑥해지는 이빨들이, 순차적으로 가지런하게 짜 맞춰지고 있었다. 한 조각씩 시나브로 레고가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거울을 보았다.


호주불 3706.50 달러니까, 한국돈 320만 원짜리 치아를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오늘도 가지런해진 치아가 볼수록 신기했다. 이 치아가 최소 15년은 간다니 망설이다 결정하고 페이 한, 꽤 비싸다는 달러가 아깝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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