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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Jun 23. 2023

아픔을 견뎌내는 정신력은 숭고하다


살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뭔가.


어려웠던, 아니 죽을 만큼 힘겨웠던 일들이 뇌리에서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한두 가지, 아니 별만큼 수많았던 내 시간 속 사건들. 지나온 시간들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내 속에서 기억으로 머물러 있었다. 부끄러운 일도, 속상했던 날들도, 힘에 부대끼며 마음을 치대던 아픔도 다, 현재의 나를 지탱해 주는 나 자신의 소중한 소품들이다. 수없이 겪은 과거의 멀미 나도록 듦의 영상에 어찌 등수를 매길까. 육체적으로 난관에 봉착했던 도 셀 수없이 많았다. 여자는 아이를 낳고 길러봐야 철이 든다니, 아마도 해산의 산고가 숭고하도록 가장 뼈저린 고통이었을까. 아니다. 아픔은 그때마다 다 숭고하다. 아픔을 겪은 존재는 다 대단하다.


최근에 아파봤다.


통증은 좀체 멎을 것 같지 않았다. 덩이가 벌겋게 부었다. 너무 아팠다. 눈다래끼는 주변에 눈썹만 뽑으면 말끔히 해결되는데 그게 아니었다. 게 퉁퉁 붓게 한 뾰루지의 덩이 통증이 미동도 안 했다. 픔은 눈덩이처럼 자꾸 불어났다. 오밤중에 자다 말고, 라벤더 눈베개를 따끈하게 데워 눈덩이 위에 수십 번을 얹어봐도 소용없었다. 낮엔 검은 안경을 써야 할 만큼 내 미까지 해쳤다. 뿐인가. 오른쪽 볼이 마치 보톡스를 맞은 듯, 이순의 내 주름살을 다 끌어갔다. 아픈 순간에도 난 미모를 잠깐 생각했다. 손거울을 들고 얼굴 요모조모를 비춰가며 양볼을 비교하고 있었다. 주름살이 가려진 얼굴이 탐이 났다. 보톡스를 한 번 맞아볼까. 나도 모르게 툭 말을 내뱉었고, 곁의 젊은 딸이 얼른 내 을 틀어막았다. 에이, 엄마 그러지 마.


상처가 또다시 아팠다.


지난주 월요일부터니까 1 주일하고 3일, 꼬박 10일간 아팠다. 진통제를 하루 세 번 먹었다. 진통제를 기다리는 그 여섯 시간의 간극에 온 입안이 쓰라리게 다. 한쪽 눈 한볼에 말이 서서 뻐근 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리 아주 힘겨운 간들이었다. 입천장의 살을 떼어내어 잇몸으로 옮겨놓은 수술자국을, 아프지 않고 아물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입안엔 아직 열댓 바늘 꿰맨 실밥이 덕지덕지하다. 미래를 위해 아픔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 순간은 참기가 참 어려웠다. 영영 아픔이 가실 것 같지 않아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러다 한쪽 마비가 오면 어쩌나, 하고. 아픈 소식을 들은 스리랑카 여인 누자가 보낸 메시지 이렇게 적힌 걸 보면, 아픔을 떨쳐내는 데 시간이 지나야 함은, 만국 공통가 맞다.  Sorry to hear that. It will take time to recover. Hope you will feel better soon.


죽을 만큼 아픈 시간이 있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었다. 너무 뜨거우니 아픈 줄도 몰랐다.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흘러넘쳤고, 한숨을 내뿜지 않으면 몸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지금 입안이 아린 시간보다, 몇 배는 긴 시간 동안 아팠다. 온도로 치자면 도자기가 구워지는 몇 천도의 고열에 내 온몸이 굽혀지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도 그 고열은 내 몸속에서 남아, 잠에서 눈 뜰 때, 잠자던 의식이 돌아올 찰나에 내 정신과 육신을 붙잡는다. 그때마다 힘듦의 그 멀미남을 어렴풋이 느낀다. 그만큼 고열에 시달린 도자기도 잘못 건드리면 깨지듯, 세상 가장 아픈 고통도 연약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희미한 윤곽의 지문으로 내 몸에 남는다. 죽을 만큼 아팠던 지난 시간들 그건, 현재 내 손톱밑에 쉼표만 한 까만 가시만 할까. 지금 손톱밑에 가시하나만 들어차도 세상 젤로 아프다. 러니 픔을 견뎌내는 모든 정신력은 숭고하다. 픔엔 레벨도 퀄리티도 없다. 그저 아픈 것이다.


남의 손톱밑 가시 박힌 그 보드라운 살, 중히 여기기로 했다. 얼마나 아플지. 다시 아파보니 새삼 또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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