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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Jun 10. 2023

봄바람이 되는 일


작년 8월부터였다.



지난해 5월부터 내 손끝에서 뜨개질 한 이불이 나오고 있었다. 한국 너투브 "아델코바늘"에서 배운 패턴이다. 옆집 할머니는 내가 이불 하나를 끝 때, 이번엔 어떤 색의 꽃 떤 모습으로 피어을까, 궁금하셨다. 완성된 이불을 보여달라고 뜨개질 한 꽃을 매번 보여드렸다. 할머니는 이쁘다며 감탄을 하셨다. 그리고 난 '블랭킷 버디스'라는 교실에 이불을 가지고 갔다. 거기서 서른 명 정도의 호주할머니들이 수요일마다 어울려 뜨개질을 다. 난 올해로 뜨개경력 1년 차가 되었고, 할머니들은 70년 차 경력직도 계시니, 그분들은 말 그대로 뜨개질 국보급이다. 그렇게 뜬 편물들은 이곳 병원과 홈리스들에게는 물론, 해외 자선단체로까지 이민을 가기도 한다.


난 색색의 꽃이불을 뜨고 남은 실로는 비니를 뜬다. 커다란 이불  때는 엄두를 못 내셨으나, 쪼그마한 모자 보신 할머니는, 뜨개질에 용기를 머금으셨다. 증손주들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내가 한국 너튜브로 배워서 뜬 모자패턴이 너무 이쁘다며 뜨개질을 배우고 싶어 하셨다. 그때가 바로 작년 8월이었다. 할머닌 매주 뜨개질 가방을 들고 우리 집에 오셨다. 내가 가르쳐드리면 엄청 열심히, 빠꼼히 내 손길을 손금 꿰듯 어보셨다. 그리고 할머니가 천천히, 아주 느리게 시범을 보이는 나를 따라 뜨개를 하였었다. 지만 아쉽다 해야 할까, 안타깝다해야 할까. 할머니는 두 달 동안 10회를 두 시간씩 배우셨는데, 비니모자를 한 번도 스스로 끝내지 못하셨다. 내가 8개의 비니모자를 마무리지어 드렸다.


이번엔 5주째 이불꽃 뜨개를 배우고
계신다.



할머니의 지인 중 만삭의 임부가 있는데 남자가 런 어웨이했단다.  임부태어날 아기를 위해  뜨개질을 5주 동안 배우고 있다. 때로 건너뛰는 주도 있었다. 생물의 꽃이 피어나는 일도 더디지만, 꽃을 뜨는 일도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았다. 생물 꽃을 피우는 일에도 햇빛과 바람이 적절한 온도를 맞춰야 하듯, 꽃을 뜨는 일도 손끝과 코바늘이 박자를 맞춰야 다. 처음 뜨는 뜨개질일수록 엇박자가 심했다.


생물 꽃이 피어나는 일도 서가 있듯이, 꽃을 뜨는 일도 한 단계씩 차례로 떠가는 질서를 지켜야 다. 질서가 안 지켜질 땐, 다 떴던 실을 다 풀어야 할 때도 있었다. 할머닌 질서를 지키면서 그렇게, 한 주에 한 단계씩 꽃을 떠 나갔다. 꽃마다 16개의 꽃술을 먼저 뜨고, 8개의 꽃잎과 잎을 뜬 후 맨 나중에 꽃의 터를 뜨셨다. 처음 만들어보신 완성품이라 삐뚤빼뚤한 선도 있지만, 5주 동안 그녀의 땀과 나의 노력과 우리 두 사람의 참음이 스며 있어, 할머니가 완성하신 열여섯 송이의 꽃이 더 이쁘느껴진다.


어렵사리 뜨개질을 마친 꽃 편물에서,
다감한 향기가 난다.





아직 꽃뜨개를 온전히 다 익히지 못하신 여든 삼할머닌, 다음 주에도 꽃을 배우러 오신단다. 또 다른 꽃뜨개 계획이 있으신 모양이다. 할머니의 꽃뜨개를 향하신 불굴의 의지는, 추운 겨울에도 꽃을 피울 준비하는 겨울나무를 닮았다. 언젠가는 할머니 스스로의  에서, 들이 활짝 활짝  피어나리라 믿는다. 쇠한 워 꽃을 뜨는 할머니 곁에서 봄바람이 되어드리기로, 마음을 가지런히 가다듬는다.


그녀의 봄꽃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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