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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Jun 28. 2023

살다 보니 별 걸 다 해 본다 •2

- 한국 뜨개질을 외국 할머니들에게 알려주는 일

2023. 6. 22. .


수할머니가 뜨개를 네 개나 해오셨다.


오전 9시 반쯤 문화센터 교실에 들어서면서, 할머니가 뜨개해 오신 색색의 밴드를 목격하고, 호주사람들 느리고 게으르다는 내 지론이 와해되었다. 지난주에 비니모자를 배우기 시작한 수할머니는 성실하고 스마트한 학생이었다. 난 곁의 할머니들에게 시즈 쏘 스마트,라고 자랑을 해댔다. 아이가 구구단을 8단까지만 배워서 달달 외운 후 공책에 가지런히 필기까지 해오면 대견하듯이, 수할머니는 내게 1단계로 배운 밴드를, 완벽한 솜씨로 네 개나 만들어오다. 난 그녀의 성의가 반갑고 고마워서 입을 헤 벌렸다. 잠시 얼이 나간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년부터 옆집할머니한테 똑같은 내용을 열 번이나 가르쳐 드렸는데, 한 번도 비니를 그녀 스스로 마무리짓지 못했었다. 그에 비해 두 번째 나의 학생, 수할머니는 얼마나 스마트한가. 1주일 동안 실을 떴다 풀기를 반복하며 닳도록 매만지셨을, 그녀 앞에 놓인 편물이 보물인 양 하게 느껴졌다. 


수할머니 허락을 받아 찰칵,
보물을 찍었다.


오늘은 이 밴드를 둥글게 잇는 방법을
 가르쳐 드렸다.


할머닌 내가 한번 가르쳐드리면 퍼뜩 인지하고 내게서 편물을 빼앗듯이 가져가서, 한 땀 한 땀 씩 편물을 하나로 잇는 작업을 스스로 잘하셨다. 그러다 끄트머리에서 바늘 콧수가 서로 맞지 않는다며 물었다. 내가 다시 빼앗아서? 다른 쪽 코를 한 코씩 건너뛰어서 끄트머리를 맞추어서 이었다. 이번엔 할머니가 나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유 아 쏘 스마트, 라 하신다. 는 작업 후 짧은 뜨기로 한 바퀴 돌, 본격적인 비니모자의 무늬에 들어갔다. 한국 유 선생한테서 배운 이 패턴을 호주할머니들은  때마다 광한다. 그녀들에겐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난생 첨 보는 패턴이니 신기하기만 한가 보다. 지난번 만들어간 교재를 탁자에 올려놓고 함께 읽으며 가르치니, 서로 정도 돈독해지고, 이해력도 향상되며, 즐거움도 배가되었다. 그러니 우리 사이의 웃음소리가 교실 안에서 종소리처럼 번져나갔다. 리언과 호주 오지녀의 웃음소리는 동일하다.


베브 할머니가 슬며시 다가오셨다.

홍,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내가 좀 봐도 돼? 하신다. 난 나의 털실을 가지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범을 보여드렸다. 다음 주부터 그녀도 합류하기로 하였다. 수할머니는 오늘 배운 여섯 줄의 패턴을 다음 주에 마무리하여 갖고 오기로 하였다. 호주사람 아니랄까 봐 서두르지 않고 한 단계씩 추근추근 배워나가는 할머니가 믿음이 간다. 베브할머니의 합류도 기대가 된다. 문화센터 앤 할머니는 너 가르치는 값 얼마 받을래? 하고 조용히 눈웃음으로 농을 건넨다. 난 너희의 웃는 얼굴로 만족해, 하고 응수했다.


오후 두 시의 학생, 칼리할머니는 오늘 친구 생일파티에 가신다며 다음 주에 오기로 하였다.

이 모자 패턴은 내가 한국 너투브, 아델코바늘에서 배운 거다. 문화센터 수할머니는 이 비니모자 뜨는 법을 매주 한 단계씩배운다. 이번이 2주째다. 다음주는 베브할머니도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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