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녀 발자국이 또담또담 들어온다.할매가 홍, 홍 부르기 전에 내가 먼저 베란다로 난 문을 밀고 나간다. 굿모닝, 칼리. 하우 아 유, 하자 아 임 파인, 하시며 서로의 아침인사를 주고받는다. 할매 손에는 빈 냄비가 들려있다. 전날 저녁에김대석 셰프의 닭볶음탕을 따라 했는데, 매콤 달콤 따끈한 게 맛있었다. 추운 밤에 딱일 것 같아서 옆집 할매 할배한테 한 냄비 안겨드렸었다.
할매가 이러신다. 홍, 진짜 맛있었어. 너 알아? 할배가 후루룩 후루룩 정말 맛있게 잡숫더라며, 두 손으로 할배 흉내를 내면서 개구쟁이 아이처럼 헤헤 웃으신다. 보통의 호주사람들은 매운 음식 앞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데, 두 분은 나와 솔메이트가 될 인연인지, 매운 걸 좋아하신다.난 고맙다며 할매의 인사를 받았다.
할매는 할배가 사주신 여덟 개의 비니 중, 오늘은 꽃이 달린 살색비니를 예쁘게 쓰고, 굽이 좀 있는 구두까지 신고 오셨다. 생강을 사 와서 잼을 할 거라고 하면서, 내 것도 병에 담아다 줄거라 하신다. 할매는 외출 때마다 곱게 화장을 하고 맵시 있게 옷을 갖춰 입는다. 예쁘다. 그래 나도 요즘은 할매한테 빙의된 듯, 외출 시 외모에 조금씩, 신경을 더 쓰게 된다.
난 일전에 할매가 구워서 갖다 주신 "파인애플과 대추빵"이 정말 맛있었다고, 할매 시간 될 때 레시피를 좀 알려달라고 했다. 할매는 나중에 적어 준다고 하며 돌아가셨다.귀여운 할매, 10분쯤 지났을까. 바깥 햇살이 따습고 맑아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데, 철문을 찰카닥 따고 또각또각 다시 들어와 홍, 홍 부른다. "파인애플과 대추빵 레시피"가 적힌 하얀 종이를 들어 흔들며 환하게 웃는 할매, 자기가 손으로 쓴 것을 내가 잘 못 알아본다며, 할배가 타이프로 톡톡 치게 하여서 프린트까지 해갖고 오셨다.
그녀의 레시피를 함께 읽으며 할매의 설명을 들었다.
Pitted dates는 씨를 뺀 대추요, simmer는 서서히 뭉근히 끓이는 걸 말함이며, bake inmoderate oven은 비교적 낮은(적절한) 온도에서 굽는 걸 의미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165도 오븐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구우라 했다. 젓가락으로 쿡 찔러보며 빵이 다 구워지면 오븐에서 꺼낸 후, 10분 후에 틴에서 꺼내라고 수차례 말씀하신 걸 보니, 덩어리가 식은 후 좀 굳어있을 때 꺼내야 덩어리가 부서지지 않는 모양이다.
어제 할매의 손글씨를 옆집 할배가 타이핑 하신, " 파인애플 앤 대추빵 레시피".
며칠 전 옆집할매가 구워다 주신 "파인애플 앤 대추빵", 엄청 맛있었다.
난 시장가시던 길을 잠시 접어두고,타이핑까지 해서 갖다 주신할매의 정성과 친절이고마워, 인사를 여러 번 드렸다. 그리고 어서 장 보러 가시라고, 게이트까지 배웅해 드렸다. 할매가 서 있던 자리의여운이 아직 따스하다. 햇살이 준 온기를 보태며 소확행이 내 몸을 감싸 안는다.
싸늘히 식은 커피가 달다.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이라는 뜻으로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을 이르는 말. 영어로 small but certain happiness for myself. - 출처 : 바다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