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시간 반 플러스 두 시간을, 동일한 공간에서 멀거니 함께 앉아 있기만 해도 정은 발생하리라. 살아있는 맥박이 서로 뛰는데, 미운 정이건 고운 정이건 생기는 게 생명체의 순리일 터. 나를 베드에 눕혀놓은 채로 나의 입안을 다 헤집어놓고 자기들 마음껏 이빨을 갈고, 살갗을 떼어내고, 개울의 흙탕물처럼 흘러나오는 내치아 사이에 흐르던 핏물을 흡입기로 빨아들이고, 잇몸을 바늘로 한 땀 씩 꿰매고... 온갖 것을 다하였는데. 잇몸에 붙인 딱풀 같은 정이 서로의 심중으로 들러붙지 않았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그쯤 되면 강아지도 정이 생기리라.특히 해외에서 인터넷을 뒤져 코리언덴티스트를 찾았고, 그녀 팀은 기대 이상으로 친절과 성심으로 내 치아에 좋은 결과를 안겨준 일이 마음 깊숙이 고마웠다. 나의 딸또래의 그녀들에게 작은 마음으로나마 보람과 용기 한 줌 얹어주고 싶었다.
며칠 궁리를 해보았다.
무엇으로 정을 표시해 볼까, 하고. 한국형 김밥? 아무래도 그들에겐 생뚱 맞거나 생소할 것 같다. 아직 젊은 외국녀들에겐 다소 이질적인 냄새도 풍길 테다. 최종 결정은, 치과에 다녀오고 나서 브런치에 글을 써 둔 걸 프린트해 가기로 했다. 내 치아를 치료하던 그 여섯 시간 반동안, 성심을 다 한그녀들의 이야기가 속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전달할까. 글을 봉투에다 넣어 달랑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냥 이메일로 보낼까. 그것도 정이라는 이름으로의 할 일은 아닐테다.가만히 생각해 보니 요즘 내가 밥 짓고 글 짓는 일 말고, 털실로 소품을 짓고 있었다. 이번에도 또 한국 유 선생, 아델 코바늘의 뜨개질 기술을 빌리기로 했다. 그래,한국 뜨개 소품이 최상이다. 이참에 한국형 고퀄러티 뜨개질 자랑도 좀 하고. 난사흘 전부터파우치 세 개를 뜨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올렸던 그녀들에 관한 글 두 편도 프린트를 했다.
파우치가 부드럽고 이쁘게 지어졌다.
잇몸 실밥을 빼러 치과에 왔다.
꿰맨 지 2주 만이다.착한 리셉셔니스트가 하이 홍, 하며 한결같이 웃으며 반긴다.조금 앉아있다니까 어시스턴트 A가 나와 나를 덴티스트 L 방으로 안내한다. 실밥 뽑을 세팅하는 A와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뜨개질에 대하여 환담을 나누는 사이, L이 들어왔다. 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마음이 당겨버렸다. 집에서 가방에 넣어 들고 온 글 두 편이 담긴 보라색 파우치와 분홍 파란색 파우치를 그녀들 앞에 내놓았다. 그녀들, 생각보다 너무 좋아한다. L은 내가 건넨 한글로 쓴 글 두 편을 펼치면서 기뻐 어쩔 줄 모른다. 오늘 밤에 한 줄 한 줄 두 눈으로 찬찬히 뜯어보면서, 영어로 어시스턴트 A에게 내용을 알려줄 거란다. A는 파란색 파우치를 골랐다. 분홍과 보라색 파우치는 L, 코리언 덴티스트가 가져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반시간 동안 치료를 잘 받고, 서로를 격려하는 인사도 나누고 귀가하였다. 그토록 아팠던 2주간의 막을 내렸다. 도무지 올 것 같지 않던 편안한 치아의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거울을 보니 해맑아진 치아가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