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 효과'란 그리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만든 대리석 여인상을 사람처럼 믿고 대했더니 정말로 아름다운 여인 갈라테이아가 되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피그말리온의 기대와 믿음이 돌을 사람으로 만든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 김용규, 같은 책, <거울> 편 p.174.
그는 급작스럽게 떠났다. 어린 시절 떠나신 엄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는 오랜 병환으로 그는 사고로 머나먼 여행을 떠난 거다. 그가 만 육천 평의 과수원 한복판에 남긴 어린 세 자녀는 모두, 열 살도 채 안되었었고 난 서른네 살이었으니, 지금의 두 딸보다 어린 엄마, 가장이 되고 말았다.친정 쪽에서는 이리도 어린 새끼들을 소복 낳아놓고 가면 어쩌냐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땅을 치고 울었다. 보다 이성적인 시댁 가족들은 기절직전의 나에게 안정제를 복용하도록 하였고, 홍아, 삼촌 장례를 어디에서 치를까, 하며 나의 의견을 존중하여 주었다. 아찔한 슬픈 중에도 난 그 배려가 여태 감사하다. 난 그가 자식만큼이나 아끼던 평택과수원에서 여러 지인들과 하직하고 고향 선산으로 안장하자고 의견을 말했고, 시댁은 그대로 해주었다. 그는 6남 1녀 중에 맨 끄트머리였으나, 짧고 굵게 살다 간다는 말을 후렴구처럼 쏟아놓더니말대로 그리 일찍 떠났다.맘씨 좋은 푸근한 그가 떠난 자리에 국밥도 맛있었다고 여러 사람들이 말했다. 공과 사로 그가 사귀어 두었던 수많은 지인들이 끝없이 와서 죽은 그에게 하직을 해주었다고 했다. 소복을 입은 난 그저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까무러치듯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다. 그를 고향의 뒷산으로 안장할 때, 무학이시어도 인품이 그 누구보다 기품 있으시던 일흔 아홉의 시어머님께서는 아무것도 모르시고, 당이 높으시다는 핑계를 대고 우선 병원에 계시도록 하였다. 이 모든 일은 집안의 어른이시던 큰 시숙님의 리드로 행하였던 듯싶다.
9월의 따끈한 과수원 햇살은 그의 심장이 이미 식은 몸을 따끈하게 덥혀놓았다. 차게 식은 몸보다는 안심이 되었다. 앰뷸런스를 타고 그의 손을 꼭 잡고 가는 시간엔 그가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주변엔 온통 그가 세 계절 동안 주렁주렁 익혀놓은 배가 살이 포동하게 찌고 있었다. 세 아이의 엄마이던 나는 세세한 농사법에문외한이었다. 그의 어깨너머로만 보아온 8년의 무경력직이던 내가 불현듯, 그가 하던 과수원 경영인이 되었다. 빼박이었다. 그가 떠난 지 열흘 후부터 난 2천5백여 그루 가을 배나무가 만삭의 임부처럼 서있는, 농부의 손길을 초시간으로 기다리는 과일이 익어가는 과수원 현장을 수습하여야 했다. 시월 초순부터 일꾼을 사서 배를 따서 냉동창고에 쌓아 올려야 했다. 8년 동안 아래채에서 과원의 일을 해주시던 김 씨 아저씨 내외, 근영엄마를 비롯한 마을사람들, 김헌웅 회장님을 중심으로 한 29명의 이화회회원들, 김주*큰 아주버님이 주축이던 시댁식구들, 그리고 내 여동생과 친정식구들이 다 내편이 되었다. 그건 순전히 인심을 푸지게 얻어놓고 떠난 그의 덕이었다. 그럼에도 과수원 작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항의 최종 결정은 내가 선택하여 확정해야 했다. 그가 남겨 놓은 소중한 우리의 일이었다. 그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그러나 내가 건사할 책무였으니 그가 이루어놓은 소중한 공간을 폐허로 둘 수는 없었다. 가슴 시릴 폐허를 보느니 차라리 성심을 다하여 보살핌이 마음 편했다. 그가 떠나고 난 내 마음엔 그가 살아있을 때보다 그로 더 꽉 차 있었다.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에 나오는 오드리헵번 분 빈민가에서 나온 꽃 파는 아가씨에 대하여 이 책의 철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꽃 파는 아가씨는 자기를 대하는 상대의 태도에 따라, 그녀가 한갓 꽃이나 파는 말괄량이 아가씨가 될 수도 있지만, 우아하고 고상한 숙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진실이란 결정된 어떤 사실이 아니라 상대의 기대감이나 예측이 그대로 반영되어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 김용규, 같은 책 <거울> 편 p.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