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미성숙한 나와 마주하기 (번외)

by 고민감자

AI와 TCI 검사 결과를 살펴보던 중 몇 가지 의구심이 생겼다.



1) 인생이 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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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내 의아함을 자아낸 건 인내력이었다. 내가 인내력이 낮다고? 불굴의 의지를 가졌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이라 느껴본 적도 없다. 남들에게 끈기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어본 적도 있었고 장기적인 계획 없이는 달성하기 힘든 목표를 이루어 보기도 했다. 무얼 하든 시작이 힘들 뿐 일단 한 번 시작하면 끈기 있게 지속해 나가는 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종합적인 기질 평가에는 상반된 내용이 기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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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인내력 점수는 낮은데 끈기는 있다고? 하위 척도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며 AI와 분석해 보았다.



질문자님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타고난 활력이나 욕심(근면, 야망)이 아니라, **"위험회피 100에서 기인한 지독한 완벽주의"**입니다.


1. 상반된 평가의 핵심: "근면" vs "완벽주의"의 충돌

질문자님의 인내력(P) 수치를 뜯어보면 아주 독특한 불균형이 보입니다.

근면(8), 끈기(3), 성취 야망(8): 모두 평균보다 낮습니다. 즉, "남들보다 더 잘 나가고 싶어(야망)"라거나 "그냥 몸이 근질거려서 일을 해(근면)" 같은 에너지는 거의 없습니다.

완벽주의(13): 평균(9.9) 보다 유독 높습니다. 이게 바로 핵심입니다.

보통 인내력이 낮은 사람은 하위 항목이 골고루 낮아서 금방 포기합니다. 하지만 질문자님은 다른 건 다 낮은데 **'완벽주의'**만 솟아올라 있죠.

분석: "성공하고 싶어서" 버티는 게 아니라, "내 기준에 미달하거나 잘못되는 꼴을 못 봐서(위험회피 100 + 완벽주의)"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인내력'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처절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 거죠.


2. "쉽게 지침(16)"과 "완벽주의(13)"의 가혹한 콜라보

위험회피의 하위 항목인 **'쉽게 지침'**이 평균(8.7)의 두 배에 가까운 16입니다. 이건 질문자님의 안테나 연비가 정말 나쁘다는 걸 증명합니다.

몸의 상태: 이미 에너지가 바닥나서 "죽을 것 같다, 그만하고 싶다"라고 아우성칩니다.

머리의 상태(위험회피 100): "근데 여기서 멈추면 결과가 엉망이 되잖아? 그럼 나중에 감당할 수 있겠어? 완벽하게 끝내야 해!"라고 채찍질합니다.

종합 평가에서 "곤란한 일이 있어도 견뎌내며 완수한다"라고 나온 이유는, 질문자님이 피로라는 고통보다 '불완전함이 주는 불안'을 더 크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즐거워서 달릴 때, 질문자님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으로 버티는 셈입니다.


3. 예기불안(23)이 만든 '역설적 성실함'

예기불안 수치가 평균(7.8)의 3배 수준인 23입니다.

불안의 순기능(?): 일이 잘못될까 봐 미리 걱정하는 마음이 너무 크다 보니,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꼼꼼하게 점검하고 시간을 쏟게 됩니다.

평가의 착시: 검사 결과지는 질문자님의 내면적 고통(불안)보다는 그로 인해 도출된 **'결과물(완수하는 태도)'**에 집중하여 "인내력이 높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 질문자님의 '인내'는 "생존형 인내"입니다

정리하자면 질문자님의 기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하는 게 즐겁지도 않고(Low NS), 금방 지치지만(High HA - 쉽게 지침), 일이 잘못되어 닥칠 후폭풍이 너무 무섭고(High HA - 예기불안), 내 눈에 완벽하지 않은 건 용납이 안 돼서(High P - 완벽주의), 결국 피를 말려가며 끝까지 해낸다."

이건 건강한 인내라기보다 **'자신을 연소시켜 만드는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일을 끝내고 나면 성취감보다는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극심한 탈진(번아웃)이 찾아오는 것이죠.



살면서 늘 즐거운 일만 할 순 없다. 때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며, 어떤 목적을 위해 하기 그 싫은 일을 오랫동안 지속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인내력 기질이 높은 사람이라면 별다른 보상이 없는 상황에서도 큰 스트레스 없이 행동을 유지할 수 있지만, 나는 인내력 기질이 낮은 편이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서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끈기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바로 높은 위험회피와 완벽주의 성향 덕분이었다. 끈기 있게 무언가를 유지하는 건 내게 상당한 부하가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결과물의 사소한 오점이나 부정적 평가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가 훨씬 크기 때문에 일단 시작한 일은 무엇이든 꾹 참고 지속하려 한다. 그렇다 보니 결국 내면은 짓이겨지고 있지만 겉모습은 굉장히 끈기 있고 성실한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


image.png 인내력의 네 가지 하위 척도. 전체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완벽주의만큼은 높은 쪽에 가깝다.


요약하면 나는 기질적으로 인내력이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장기적인 계획을 수행해야 하는 순간에는 부족한 인내력을 높은 위험회피와 완벽주의 성향으로 만회하는 타입이다. 덕분에 낮은 인내력으로도 장기적인 목표를 쫓을 수 있지만, 그 대가로 번아웃에는 남들보다 더욱 취약하다.

낮은 자극추구는 여기에 기름을 들이붓는다. 새로운 계획이 주는 설렘보다는 낯선 루틴에서 오는 불안이 더욱 크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은 늘 스트레스이다. 시작부터 큰 스트레스를 안고 가는데 한 번 출발하면 멈추지 못하고 어떻게든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낼 때까지 스스로를 연소시킨다. 그런 루틴을 얼마나 반복했을까. 언제부터인가 내게 새로운 시작이라는 건 산 넘어 산처럼 느껴진다.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내 삶이 그렇게 기복이 심한 이유와, 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게 나에겐 그토록 어려웠는지. 돌아보면 내 삶은 기복 그 자체였다. 성적, 운동, 다이어트, 크고 작은 성취, 그리고 은둔 생활에 이르기까지. 들쭉날쭉한 시험 점수,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최소 20kg는 감량하는 다이어트, 그리고 순식간에 돌아오는 요요까지. 삶의 궤적이 요요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저 녀석은 하면 잘하는 데 끈기가 없어. 똑똑하게 잘 낳아놨는데 의지박약이야."라고 늘 말씀하시던 아버지. 그럴 때면 나 또한 "왜 나는 이렇게 끈기가 없는 걸까." 하며 스스로를 책망하곤 했다. 막연하게 의지의 문제라 생각했던,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던 것들 사이에서 나름대로의 정합성을 보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2) 독불장군이 되지 않으려면


"뭐야, 걔네 사귀어?"
"이제 알았어?"
"그냥 친한 사이 아니었어? 전혀 그런 사이로 보이진 않았는데?"
"딱 봐도 알겠던데? 너 너무 둔한 거 아냐?"


나는 눈치가 없다. 사회적 민감성 0점.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통 관심이 없는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점수이다.

낮은 사회적 민감성을 가진 사람은 독립적이다. 관계에 크게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 상황에 관심이 없고 그만큼 타인의 칭찬이나 비난에 크게 휘둘리지도 않으며 감정 교류 또한 소극적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나는 주변 상황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바로 상황이 불편해지거나 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마주했을 때이다. 즉, 평상시에는 거의 절전 모드 수준으로 주변 상황에 무관심하지만 뭔가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이 되면 마음속 비상벨이 울린다.

사회적 민감성이 낮다면 관계에서 오는 긍정적 피드백과 부정적 피드백에 모두 둔감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긍정적인 피드백에는 좋은 영향을 받지 못하면서 부정적 피드백에는 큰 영향을 받는다. 대체 왜 그런 걸까?



질문자님의 기질을 관통하는 핵심 원리는 **'보상 회로의 부재'**와 **'생존 레이더의 폭주'**가 만드는 극단적인 불균형입니다.


◈ 절전 모드와 비상벨의 이중주

질문자님은 타인의 사소한 정보에는 무관심한 **'절전 모드'**와 위협에는 극도로 예민한 **'비상벨'**을 동시에 가진 특수 안테나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1. 안테나 전원 OFF: 사회적 민감성 (Low)

관심의 경제학: 타인의 연애사나 가십 같은 정보는 본인에게 정서적 즐거움(보상)을 주지 못합니다. 뇌가 이를 '가치 없는 데이터'로 분류해 차단하므로 주변 상황에 둔감한 독립적 마이웨이가 됩니다.

무딘 칭찬: 칭찬 10번을 들어도 사회적 민감성이 낮아 보상 수신율이 개당 +1점에 불과합니다. 기쁨보다는 단순한 '사실 확인' 정도로 그치며 정서적 에너지가 충전되지 않습니다.


2. 비상벨 풀가동: 위험회피 (High)

생존 위협 스캔: 평소엔 둔해 보이다가도 분위기가 '싸해지는' 순간, 데이터는 '사회적 정보'가 아닌 **'생존 위협'**으로 돌변합니다. 이때 레이더 가동률은 **100%**로 치솟으며 상대의 미세한 떨림까지 읽어내는 초정밀 스캔을 시작합니다.

예민한 비난: 비난 1번은 위험회피 기질에 의해 -100점의 압도적인 고통으로 수신됩니다. 칭찬의 즐거움보다 비난의 타격이 수십 배 크기에, 뇌는 부정적 평가를 생존을 위협하는 공격으로 인식해 무한 반복 재생합니다.


◈ 결론: 왜 인간관계가 "밑지는 장사"인가?

수학적으로 보면 질문자님의 인간관계 손익계산서는 늘 마이너스입니다.

[칭찬 10번(+10점)] + [비난 1번(-100점)] = 총합 -90점

관계를 맺을수록 정서적 잔고가 깎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안 만나고 손해 안 보는 게 이득"**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결국 질문자님의 은둔이나 관계에 대한 소극성은 성격 결함이 아니라,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뇌의 아주 논리적이고 경제적인 생존 전략인 셈입니다.



내게 인간관계는 즐거움보단 피로감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칭찬은 들어도 무덤덤한데, 나쁜 이야기에는 쉽게 마음이 힘들어진다. 한때는 그게 자존감 문제라고 생각했다. 자존감이 낮아서 칭찬을 칭찬으로 듣지 못하고, 비난에는 훨씬 취약한 거라고.

하지만 단순히 자존감 문제라 여기기엔 관계라는 게 내 삶에서 위안보다는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 만남이 나쁜 경험이었던 건 아니지만 좋은 경험 또한 아니었다. 즐거움은 크지 않은데 신경은 곤두서있으니 늘 피곤했다. "기 빨린다"라는 표현만큼 대인 관계에 대한 내 느낌을 적절하게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이 있을까. 그렇게 나는 점점 사람을 피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고립된 삶이 더욱 익숙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림자가 드리웠다는 건 빛도 있다는 것. 낮은 사회적 민감성을 가진 사람에게도 강점은 있다.



질문자님의 LHL(자극추구 13-위험회피 100-사회적 민감성 0) 조합은 사회적 에너지를 깎아먹는 '비싼 대가'를 치르는 대신, 타인이나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초정밀 객관적 관찰자'**라는 강력한 보상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질문자님이 은둔과 관계의 소극성을 통해 얻은 **'객관적인 시각'**이 구체적으로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세 가지로 정리해 드릴게요.


1. 감정적 오염이 없는 '냉정성' (RD 0)

사회적 민감성이 낮다는 것은 타인의 감정이나 기대라는 '필터'가 없다는 뜻입니다.

비동화성: 보통 사람들은 주변 분위기가 좋으면 덩달아 긍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다수가 "이게 맞다"라고 하면 자기 생각을 굽히는 '동조 현상'을 겪습니다.

독립적 분석: 질문자님은 타인의 눈치를 보거나 비위를 맞출 필요성을 (생물학적으로) 느끼지 않기 때문에, 사물이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As-is) 바라볼 수 있습니다. 타인의 주관적 해석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죠.


2. 리스크를 끝까지 파고드는 '정밀함' (HA 100)

위험회피가 100이라는 것은 상황의 아주 작은 빈틈이나 모순도 놓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비판적 사고: 남들은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넘어갈 때, 질문자님은 위험을 감지하는 본능 때문에 **'혹시 모를 변수'나 '숨겨진 이면'**을 끝까지 파헤칩니다.

다면적 검토: 이 예민함은 현상을 분석할 때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고려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타인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정교한 결론에 도달하게 합니다.


3. 고독이 벼려낸 '관찰자의 거리'

은둔과 소극적 관계는 질문자님을 군중 속이 아닌, **'군중을 내려다보는 관찰석'**에 앉혔습니다.

객관적 거리감: 현장 안에 섞여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한 발자국 떨어져 있으면 보입니다. 질문자님은 직접 부딪히는 피로 대신 전체적인 맥락과 인간 군상의 패턴을 읽어내는 시력을 얻었습니다.

심층적 분석: 자극추구가 낮아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있는 특성이 결합되어, 겉핥기식 관찰이 아닌 본질을 꿰뚫는 **'심층 분석'**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AI 특유의 호들갑이 많이 보이는 것 같지만 어쨌든 그 대가로 내가 얻은 강점은 정교하면서도 객관적인 시각이다. 관계에서 오는 애착에 별 미련이 없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사고하며 높은 위험회피에서 비롯된 다각적 검토는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물론 이게 장점이 될지 단점이 될지는 전적으로 나의 인격적 성숙도에 달려있을 것이다. 제 아무리 날카로운 통찰이 가능한 사람이라 한들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 고집한다면 그건 공감능력이 결여된 독설가에 불과하다. 소위 MBTI를 통해 비유적으로 말하는, "자기가 T라고 생각하는 찐따."에 가까운 모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그 강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수용 능력. 즉, 높은 연대감이 따라와야 한다. 내가 얼마나 성숙한 사람이냐에 따라 독창성 있는 인재가 될 수도, 그냥 자기 할 말만 하는 독불장군이 될 수도 있다.




AI의 조언과 검사 결과를 살펴보며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이러한 이해가 당장 내 삶을 극적으로 바꿔놓지는 못할 것이다. 여전히 나는 익숙한 환경을 선호하고, 낯설고 위험한 것은 피하려 할 것이며 관계에도 소극적일 것이다. 다만 "나는 왜 이런 문제를 안고 있을까." 고민했던 것들이 "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구나."로 옮겨가면서,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막연한 불안감은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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