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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림 May 01. 2022

목격자

-자작시

목격자

    

     한상림


18층 아파트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던져졌다

귀 떨어진 별똥별이 허공에 뿌려질 때

목방울 힘껏 흔들어도 봤을

두려운 저 바닥으로의 낙하

뭉개진 얼굴과 남은 반쪽의 애절한 눈빛

부러진 척추를 비틀며 쏟아지는 핏물을 찍어

주차장 콘크리트 바닥에 대고

이승에서의 마지막 편지를 쓴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아주 짧고 단순했고

절대 배반하지 않을 것 같던 주인에게

꼬리 흔들며 딸랑거렸을 방울마저

유서를 쓰는 고요한 순간에 울지 않았다

경비원이 들고 온 쓰레받기에 담겨진 육필 한 덩이,

퍼포먼스를 지켜보던 관람객들이 기웃거리다 갔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어느 일간지에서

검은 고양이의 유서를 읽을 수 없었다

몇 해 전, 하얀 철쭉 꽃잎 열리던 새벽

사랑니처럼 던져진 한 여인,

책가방을 맨 채 슈퍼맨이 될 수밖에 없었던 남학생의 유서,

바닥은 여전히 함구한 채

딱딱한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 저녁



오래전에 목격한 한 컷을 시로 담았다.

시댁인 대전에서 명절을 쇠고 서울로 돌아오려고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18층 아파트 어느 층에선가 검은 물체 하나가 보이더니 승용차 백미러를 맞고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눈 깜빡하는 순간이었다.

허공에서 툭 떨어지는 찰나 바닥에 내동댕이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팔다리를 바르르 떨더니 곧 숨이 멎었다. 그리고 금세 달려온 경비원의 쓰레받기에 담겨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고양이.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고양이처럼 뛰어내린 두사람이 있었다.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끔찍한 죽음은 스스로 선택해서는 안되지만 아마도 그마저도 스스로 통제력을 잃었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해마다 그 중 한 사람인 우리 집 바로 위층에서 살던 글로리아 자매님의 환한 웃음을  현관 입구에 핀 철쭉꽃에서 찾아본다.

 

그녀의 나이는 52세였다.

xx 글로리아는 성당 교우이면서 바로 내가 소속한 구역 반장이었다.

웃을 때마다 콧잔등에 잔주름이 매력적이던 그녀,

뽀얀 피부에 예쁘고 여성스러운 얼굴이면서 언제나 잘 웃어서 그녀에게 그런 그늘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반모임을 하면서 만나왔고, 바로 우리 집 위층이라서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났기 때문에 그다지 친하게 사적인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어쩌면 그당시 나는 고2짜리 첫 아이를 잃고 힘들어하던 때라서 그녀에게 더 신경을 쓰지 못하였던 거 같다.

평소에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정도로 해맑고 밝은 웃음을 늘 띠던 그녀가 왜? 하필 11층 바로 우리 집 베란다에서 뛰어내린 것인지...


훗날 그녀의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우울증이 심해서 병원 치료를 받아왔고, 전에도 아이들 어렸을 때 그런 불상사가 한 번 있었기 때문에 그를 극복하기 위해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는 것이다. 그 당시 구십이 넘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았는데 지방에 사시는 시어머니까지 암에 걸려 집으로 모셔왔단다.


친정어머니는 이미 치매가 와 딸에게 돈 3만 원을 훔쳐 갔다고 난리를 쳤단다. 시어머니 병원 모시고 다니랴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상황에서 친정어머니를 잠시라도 다른 형제자매에게 부탁하여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치매에 대한 기본 상식이 있었다면 그러려니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겨도 될 일이지만, 그런 걸 몰랐으니 더더욱 힘들었을 거라는 추측이 든다.


 그녀가 떨어진 아침, 복도 창문 앞에 삼선 슬리퍼 한 짝이 떨어진 걸 눈으로 보았고, 이른 아침이라서 그녀는 이미 응급실로 실려간 후라서 마지막 모습을 보지는 못하였다. 그렇게 그녀는 연분홍과 하얀 철쭉이 아파트 현관 앞 양쪽 화단에 활짝 핀 오월 어느 날 별이 되었다.

그녀가 떠나던 2004년도 5월 이후 해마다 철쭉이 환한 꽃밭을 바라볼 때마다 강 글로리아 그녀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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