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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림 Apr 08. 2022

산수국

-자작시(월간 모던포엠 3월호)

산수국


   한상림


누구도 그녀를 참꽃이라 이름 부르지 않았다

배고픔 대신 씨받이로 들어와

그늘 밑에 몰래 꽃 피워

맺은 열매는 안주인에게 빼앗겼을 뿐,

오 남매 핏덩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엄마를 작은엄마라 불렀다

한집 살면서 등 한번 펴보지 못하고

뒷방에서 살아야 했던 그녀와

다섯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둥지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감시하고 감시받으며 평생을 살았던 그녀들

모두 세상에 헛발 딛고 살았던 건 마찬가지다

남편 세상 떠난 후

아이들 하나둘 둥지 틀어 나간 빈 둥지에서

형님, 동서 서로 의지하며 헛꽃을 피우더니

한 송이 산수국으로

보라색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다



이 시는 지난해 썼던 시로서 지난 3월호 월간 <모던포엠>에 "어머니와 비밀번호"와 함께 실린 시다.

보편적으로 내가 쓰는 시 속에는 실제 주인공이 거의 들어있다.

나와 주변 사람들 혹은 인간극장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아픈 이야기를 시 속에 담아 놓고, 가끔 시집을 들춰 보면서 그 주인공들을 회상하게 된다.


이 시의 주인공은 오래전 참 많이 사랑했던 한 사람과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 담긴 가슴 아픈 이야기다. 그래서 참 많이 망설이면서 이 시를 세상에 내놔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다가 발표를 하게 되었다.


산수국은 얼핏 보면 헛꽃잎이 진짜 꽃처럼 화려하고 예쁘다.

본 꽃은 그저 수수하고 평범하기 때문에 벌과 나비가 찾아오지 않는다. 화려한 가짜 꽃잎 즉 꽃잎이 아니라 꽃잎인 척하며 향기를 내는 꽃을 보고 찾아와서 수정을 맺게 하는 거라고 한다.


6.25 한국 전쟁 후 월남을 하여 먹고 살기 힘든 한 여인이 있었다.

어느 집에 씨받이로 들어왔다가 칠 남매를 낳고 그만 눌러앉아 살았지만, 호적에는 본 부인이 아닌 동거인으로 평생을 살게 된 것이다. 본 부인은 첫애를 출산하다가 잘못돼서 아이를 낳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자손을 위해 두 번째 부인에게 자식을 얻었지만, 하나 둘 셋넷다섯... 칠 남매를 낳게 되면서 두 번째 부인은 집을 떠날 수가 없었을 거다.  그러는 동안에 아이들은 친엄마를 작은엄마라고 부르고 본부인을 큰엄마라고 하면서 친모인 줄 알았다고 한다. 물론 성장한 후에는 모두가 알게 되었지만...


남편이 먼저 떠나고 나니, 칠 남매 모두 성가 하여 가정을 꾸려 나가고, 남은 두 어머니만이 서로 형님 동서 하면서 한집에서 살다가 이승을 떠나셨다.

지금 세대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 자식들 세대가 지금 중장년 노년기를 접어들고 있으니, 그리 오래전 이야기는 아니다.

산수국을 보면서 그 두 여인의 아름다운 삶이 떠올랐다.


표지 출처:<a href="https://pixabay.com/ko/?utm_source=link->재형 한</a>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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