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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림 Mar 30. 2022

벚꽃 사서함

 -자작시

벚꽃 사서함


      한상림


하얀 웃음이 흐드러지게 폭발합니다

저 봄비는 시샘인가요, 어리광인가요

여린 바람에도 눌러 참고 있던 웃음이

하르르 쏟아지고 맙니다

떨어진 웃음을 무심코 밟고 지나다

벚나무 아래 파여 있는

깊은 웅덩이 하나를 들여다봅니다

눈물 흥건히 고인 웅덩이에서 들려오는

슬픈 여자의 울부짖음이

뭉그러진 꽃잎 발자국으로 찍혀 나옵니다

지난밤 가출한 꽃잎을 찾아 나선 그녀의

텅 빈 벚꽃 사서함

왜? 왜? 왜? 하필이면 꽃잎 쏟아지는 봄날에 떠나야 했냐고,

물어뜯고 따져 보아도 돌아오는 답장이 없습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스스로 피고 지는 꽃잎이 된 거냐고,

돌아와 달라고,

당장 돌아오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긴급 소환장과 함께

열세 살 딸아이가 울음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사서함에 가지런히 넣어줍니다




2021년도 지난해 4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이었다,

무책임한 40대 중반 가장(家長)이 아파트 지하주차장 승용차 안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13살, 11살 두 딸을 남겨 놓고, 44세 아내에게 유서 한 장 남겨놓지 않고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다.


워낙 아빠를 따르고 좋아하던 초등학교 6학년였던 딸아이는 아빠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하고,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도와주고 있는 딸아이 이모나 이모부까지 힘들게 한단다.

작은딸 아이는 엄마도 행여 아빠처럼 갑자기 사라질까 봐 불안감으로 엄마 주위만 맴돈다고 하였다.


지난 2월 시모상에 온 그녀는 장례식장에 도착하여 떠날 때까지 내내 울기만 하였다.

나는 그녀와 마주 앉아 위로해주면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전 오은영 박사의 상담 프로그램을 보던 중에 이런 경우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그대로 놔두면  아이 스스로 치유하지 못하고, 훗날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해 살아가는게 더 힘들게 될 것이니 얼른 상담치료를 해 주라고 권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그녀는 상담비가 부담이 되어서 당장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어린이집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생활비와 분양받은 아파트 중도금을 납부하려면 전혀 여유가 없을 거 같아 안타깝다.


올해도 벚꽃이 흐드러진 4월이면, 1주기 기일을 맞아 아이는 또 얼마나 아빠를 찾고 힘들어할까?

가족 간의 느닷없는 죽음의 이별은 남은 가족에겐 항상 드러낼 수 없는  뼈저린 고통이다.

그리고 평생을 그 트라우마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때때로 남들에겐 이해하지 못할 행동으로 보일 수가 있다.


아빠에게 손편지를 꾹꾹 눌러쓰면서 힘들어한다던 아이 이야기를 듣고 지난해 쓴 시

<벚꽃 사서함>은 열세 살 아이가 하늘나라 아빠에게  보내는 소환장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댄디한 사진 영상작가>

https://m.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zak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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