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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림 Feb 05. 2022

눈발

- 자작시


눈발


   - 한상림



눈송이가 제 갈 길로 흩어지며

도심 불빛 속 거리를 맴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한 하얀 눈빛들이

어둠 속으로 등을 돌리고

바닥에 몸을 눕히는 순간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발자국들


오래된 그림자로 서 있던

첫사랑이

소리 없이 지워지는 중이다




첫사랑은 언제나 그리움이다.

오늘처럼 소리 없이 눈발이 날리는 날,

문득문득 머릿속을 맴돌다 흐려져가는 그런 사람 하나 있다.


스무 살에 만난 첫사랑


단발머리를 둥글린 숏트 머리에

하얀 폴라티를 입고, 검정 벨벳 재킷을 입고

회색 나팔바지를 입은 얼굴이 뽀얀 소녀와 눈이 마주치던 순간

'앗, 그녀야, 언젠가 내가 꿈속에서 그려보던 여인...'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스쳐만 가던 눈빛


어느 날, 미팅 제안이 와서 그와 나는 서로 미팅을 주선하였다.

미팅 전, 그는 나에게 우리 둘이는 파트너로 먼저 정해놓고 하자고 하였다.

무슨 체면 타령인지,

그가 맘에 들었지만 절대로 그건 안 된다고 고집 피우면서 원칙대로 하자고 제안하고,

결국 그와 나는 엇갈린 만남으로 1년 동안 또 허송세월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와 가장 친한 친구와 내가 파트너가 되고, 나와 가장 친한 친구와 그가 파트너 되었다.

서로 말 못 하고 끙끙대던 어느 날, 학교 옥상에 앉아서 그에게서 첫 고백을 들었다.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하고 있었어."


그에게정식 프러포즈를 받고 만남을 시작했다.


첫사랑이라는 신선한 사랑을 가슴 깊이 새겨 둔 사람,

그와 나는 여전히 빛바랜 추억 속에서  그리움으로 살아간다.


오늘 같이 눈발 흩날리는 날,

그도 나도, 수백 번 거닐었던 보문산 추억로 눈길을 떠올리면서 그리워하겠지.


그는 여전히 대전에 살고, 나는 서울에서 살면서

이십 대 청춘이 어느새  하얗게 늙어가는 중이다.


지금도 가끔은 첫사랑의 가장 친한 친구인 H 씨가 술 한잔 하고 쓸쓸한 밤이면 강원도 먼 곳애서  문자를 날린다.


"림, 그리운 사람.  보고 싶어요 . 꽃망울 같은  영혼과 자태. 우리 올해는 자주 만나요. 만나서 동해든 서해든 함께 가요.

내가 S에게 연락할게요."


 한번도 예전처럼 셋이 만나서 여행한  없이 그저 추억 속에서만 옛날을 그리워 할 뿐,

 그날 그때를 기억해 주면서 유일하게 표현해 주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의 친구이다.


옛날을 회상하면서 그때처럼 넷이 만나 통기타도 치고 노래  부르고  여행을 자고...


술 깨어난 다음 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흩어지는 눈발처럼 왔다가 슬며시 지워지는  문자들 


잠시 추억 회상하며 오고간 문자들 속에서만 우리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까지 머물러 있는  청춘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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