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CY Mar 08. 2016

그냥 재미있으니까 1.

그림의 역설


 그림이라곤 보는 것만 좋아하던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다분히 필요에 의해서 였다. 엄마가 가게를 하는데에 장식 할 것이 필요했고, 원하는 그림들은 시중에 없었다. 낙서처럼 끄적이기만 하던 실력으로 대충 그려 벽에 걸었다. 그것이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 시작점이었다.

 어릴 때 누구나 한 번 쯤 다녀 본다는 미술학원을 고이 접은지 20년 만의 일이었다. 어릴 때의 미술 학원은 의무감에 가득 차서 흰 도화지에 아무 거나라도 때려 넣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없는 공간이었다. 중압감에 붓을 들었고, 정답이 있는 '상상 그리기'를 해댔고, 채우고 싶었던 그림 대신에 순수한 아이 코스프레를 해야만 했던 미술 학원은 그림 또한 창의력 보다는 정답이 있는 시험 공부와 같다는 결론을 주었다.

  왜 과학 상상 그리기에서 차는 날아야하고, 봄 풍경은 초록과 개나리, 혹은 진달래여야 하는지, 포스터에는 왜 네다섯가지 색깔만 써야하고, 틀에 박힌 문구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해져 있는대로 그리고, 채색할 뿐. 그래서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재미가 없어졌다.

 동생은 그림을 오래 배웠다. 입시 미술이란 것을 보면서 저래 가지고 창의력이 생기겠나 하면서 혀를 차댄 기억이 난다. 사지선답 수능 시험의 미술 과목 같다. 정답이 있다.


 어떻게 예술에 정답이 있을 수 있을까.

 

 재미가 생긴 것은 내 멋대로 그리기 시작한 이후 부터다. 선도 삐뚤 빼뚤, 채색도 이상하지만 난 화가가 되자고 그림을 그리지 않기에 상관 없다. 그림을 팔자고 그리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재밌어서'.

 흰 도화지를 채워가면서 나를 비웠다.

 답이 없는 곳에서 생각하다 보니 얻어가는 것들이 꽤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고 싶을 때 그리는 그림은 정말 행복하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텅텅 비워진다. 대신에 도화지는 '나'로 채워진다.    

 

 채우면서 비우는 것. 그림의 묘미다.

 나는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닦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