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 앞에서 사라져 줄래?
아르바이트를 뛰기 위해 울산에 내려 왔다. 불규칙한 수입의 프리랜서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꾸준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다. 일이 생기면 본업으로 뛰어들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프리랜서가 될 수 있다.
울산에 운전하면서 내려오는 동안 온갖 잡다한 말풍선들을 닦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앞으로 뭐 먹고 살지는 기본이고, 뭘 해서 먹고 살지, 나의 진로는 무엇이 될지 라는 원론적인 물음들에서 시작하여 과연 아르바이트를 잘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람들은 괜찮을까, 난 또 어떤 사람으로 있어야 할까 라는 당장의 걱정들, 저녁은 뭘 먹을까, 담배를 미리 사야할까, 다음 휴게소에 들릴까 등등의 사소한 걱정들이 뻥 뚫린 고속도로를 채워댔다. 와이퍼로는 닦아낼 수 없는 먼지들.
늘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채운다. 머리로는 모자라서 눈 앞까지 아른댄다. 하나하나 지워나가면 또 다른 하나가 채워진다. 담배를 피워대면서 이 담배 연기에 다 날아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꿈이고, 허상이다.
고민과 생각들은 나쁘지만은 않다. 발전할 수 있고, 선택의 열쇠가 된다. 그러나 너무 많으면 독이다.
난 아직도 진로를 고민한다. 연기냐, 글이냐, 또 다른 무엇이냐. 사람들이 묻는다.
"배우예요?"
그저 웃는다. 배우라고 하긴 부끄럽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내 연기에 자신이 없는건가?', '이런 마인드로 연기를 계속해도 될까?' 하는 기타 등등의 생각들이 파생된다. 그러다 보면 늘 주기적으로 다른 길을 찾게 되고, 집중하거나 노력하지 않게 된다. 또 다른 길에서 가로 막히면 이 길로 돌아와 선택 받기 위해 노력한다. 에라이, 난 똥이다.
생각을 없애야 한다. 우스갯 소리로 "전 A형이라 선택장애가 있어요."라고 말하지만 피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많은 탓이다.
울산으로 내려오는 내내 단순해지고 싶어서 수도 없이 닦아냈지만 그들은 계속 자신들의 종족 번식을 투철하게 이행해댔다.
아마 나는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다.
내일 눈을 떠서는 이 늪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고민해봐야겠다.
울산의 첫 날밤.
유흥가의 네온 사인만큼 생각들이 번쩍인다.
아, 잠이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