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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Mar 09. 2016

온전한 밤

그래,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2014.02.08 진주 귀걸이를 한 돼지


 울산에서의 3일째  밤.


 거나하고 배부르게 열시에 하루를 마무리 했다. 부엉이인 나에게 저녁 열시는 이제 날개를 펴야 할 시간인데 하루의 마무리라니. 시차 적응이 완벽히 되었나 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른이. 아, 내가 어른인가 싶다가도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는 그 숫자에 다다른 내 나이를 떠올리니 어른이구나, 한다.


 사실 골라먹는 재미따윈 없다. 둘러 볼 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사는 재미 없는 어른 나이. 어른이라기엔 마냥 철이 없는데 태어난 숫자가 오래 되었다 해서, 주민등록증이 있고, 운전 면허증이 있어서, 기타 등등의 많은 이유로 나는 '어른'이라고 분류 된다. 그래서 사회의 이목에 맞춰 어른이 되려고 노력한다.

 

 내 스스로 돈을 벌어 생활하고, 판단 할 줄 알고, 생각이 깊은 듯 말하며, 교양 있는 척 행동한다. 있는 척 하는거다. '척' 하기 위한 수십개의 포장지를 뜯어야만 온전한 내가 나온다. 아마 모든 사람이 그럴것이다. 가끔 상대가 "나는 널 너무 잘 알아.", "넌 눈에 빤히 보여." 라고 말하면 헛 웃음이 난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김국환이란 가수의 '타타타' 라는 노래에 나오는 가사다. 명곡이다. 나에 대해서 아는 척 하는 이들에게 손가락질 해대면서 불러주고 싶을 정도다. 그렇다고 그들이 바뀌는 것은 없다.


 '척' 하는 것은 매우 귀찮고, 힘들다.

 

 왜 세상은 나를 있는 그대로가 아닌 보편적 잣대로 평가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사회에서 떠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점수, 졸업한 학교, 직장, 수입, 끌고 다니는 차, 집의 평수, 사는 동네, 부모님의 직업, 입는 옷, 취미 생활 같은 것들.

 "난 달라."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나도 이 사회  속에 존재하기에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 순간 부터 가면을 쓰기 시작했고, '척' 하기 시작했다.


 속 빈 강정이 되었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내 스스로 날 비웃을 때가 많았다. 화나도 괜찮은 척, 조신한 척, 착한 척. 무조건 "네.", "그래요. 그렇게 하죠, 뭐.".

 결국, 난 화병을 안고 정신적인 피폐함으로 폐인처럼 일년을 살았다. 내가 나를 갉아 먹은 셈이다.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사람들이 손가락질 해댔다.


 "쟨 싸가지가 없어."

 "쟨 너무 욱해서 탈이야."

 "너무 솔직해."


 남들이 혀를 차든 손가락질을 해대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양심에 찔리거나 예의가 없게 행동한 것은 아니니까. (-혹여 예의가 없게 행동 했다면 그건 내가 그런 대우를 해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고로, 당신이 나를 존중하지 않았기에 나도 당신에 대한 존중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는 거다.)


 남들이 뭐라든 포장을 뜯고 나니 내 숨통이 트였다. 사람들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너무 솔직해서 '이단아, 특이한 애'가 되었으나 사람들은 그런 걸 "쿨한 여자"라고 좋게 또 포장해준다. 좋은 세상이다.

  

 나를 가두고 있었던 답답한 포장지를 벗기고 나니 세상이 밝다. 엿 같던 세상이 엿처럼 달달하다.

 

 무조건 어른이 될 필요는 없다.

 무조건 세상의 잣대에 맞춰 갈 필요도 없다.


 기분 좋은 깨달음.

 그래,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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